[칼럼] 박완규 민주당 부대변인‧포럼동행 공동대표

▲ 박완규 민주당 부대변인‧포럼동행 공동대표

어제와 오늘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기어이 오늘 아침에 우리 집 수도가 얼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 겨우 물을 구해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왔다. 으으 추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여름이 그다지도 뜨겁더니 겨울이 되니 이다지도 차갑다.

어렸을 적 겨울이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갈퀴로 나뭇잎을 박박 긁어서 망태에 담거나 지게에 지고 와서 부엌의 아궁이 앞으로 져다 날랐다. 난방도 없던 그 시절에 얼어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엔 난방비 걱정은 없었다. 내가 부지런을 떨면 아궁이에 불은 땔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냉방에서 자야 한다. 어제 어느 집을 방문했더니 방안이 동토의 왕국이었다. 그분에게 왜 난방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기름 값이 무서워서 겨울 내내 온 식구가 전기장판에 의지해서 산다고 했다. 난방비로 나가는 돈이 무서워서 차라리 추위를 견디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러다가 기온이 너무 떨어지면 방안의 온기를 유지하는 정도만 겨우 보일러를 돌린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봉사 단체의 일원으로 연탄 배달을 갔다. 연탄을 필요로 하는 가정마다 300장씩 배달을 해 드렸는데 나는 일부러 맨 산꼭대기에 사는 할머니 집을 골라서 배달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할머니 집에 300장의 연탄배달을 모두 마친 다음에 빈 지게를 지고 털레털레 내려오는데 할머니가 고함을 지르며 쫓아오셨다. 연탄이 300장이어야 하는데 3장이 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300장을 채워주기로 했으면 300장을 채워줘야지 왜 3장을 빼고 주냐며 화를 내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했다. 얼른 내려가서 다시 가져오겠다며 할머니를 달랬다. 다시 내려가서 연탄 15장을 지게에 지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그제야 할머니가 웃으셨다.

그 모습은 겨울을 맞이한 할머니의 절박함이 아니었나 싶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알고 보면 추위 앞에서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다. 짐승처럼 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나 닭처럼 깃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개구리나 곰처럼 땅 속이나 굴속에 들어가 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선채로 겨울바람을 견디어 내는 그런 강인한 존재도 아니다. 그렇게 미약한 존재이면서 온갖 똑똑한 척은 다 하고 산다.

오늘 아침 찬물로 머리를 감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돈이 없어서 찬물로 세수를 하는 사람들은 이 겨울이 얼마나 추울까. 요즘 경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경제의 체감 추위는 지갑의 두께와 반비례한다. 그 한파는 없는 사람들의 삶부터 얼리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겨울은 길게 남았고, 혹한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추운 밤을 누군가는 어렵게 넘기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히 필요함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니 겨울의 긴긴 밤에 우리 주변이 다들 안녕하신지 조금만 챙겨보았으면 좋겠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새해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할 때면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 전에 내일의 나를 꿈꾸는 것부터 시작한다. ‘새해에는 이런 일을 해야지’, ‘새해에는 이것을 꼭 이루어야지’ 이렇게 이루고 채우고 더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 보니 현재 내가 가진 것보다 앞으로 내가 갖고 싶은 것들에 관심이 더 많다. 더 큰 집과 더 큰 차도 필요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사업도 키워야 하고 자꾸만 내게 부족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게 된다. 그래서 가는 해와 오는 해가 가만히 손을 겹치고 있는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을까?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버려 할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을 곰곰이 하다 보니 떠오를 새해의 태양 앞에 아직도 남아있는 나의 욕심이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늘 한 번씩 읽어보는 진 켄워드의 시가 있다.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의 시다.

낡은 것들은
노래하는 마음으로 뒤로하고
옳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그릇된 사람들은 용서하고

지나가버린 시간에
당신을 묶어놓는 후회들은
다 잊어버리고
...
당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데 보태는 것
그게 바로 새해 복을 받고
복을 주는 겁니다.

당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 데 보태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을 받고, 복을 주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섣달그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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