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여 만에 ‘갑질 공무원 무관용 원칙 적용’ 등 개선책 발표

▲ 권오봉 여수시장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여수시 제공)


권오봉 시장, 피해자·시민께 사과…고충상담센터 내실화·순환 보직제 확대

지난 3월 여수시청 A 팀장이 신입 여성 공무원들에게 술자리 강요, 욕설 폭언 등 갑질 피해로 이를 견디다 못한 공무원이 사표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인 가운데 여수시가 공무원 갑질 및 공직 비위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 적용 등 쇄신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두 달여 만에 내놓은 대책치고는 새로울 것이 없는 재탕에 사후약방문식 개선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권오봉 여수시장은 지난 12일 시청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갑질 파문 이후) 지난 3월 25일 기자들과 차담회 때 이미 언급했지만, 갑질 피해 당사자들과 식사하면서 사과를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입 직원들이 뜻을 펼치려고 시청에 입사했는데 그런 아픈 경험을 했고 한 분은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경위야 어찌 됐든 간에 조직을 관리한 책임자로서 시민 여러분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드린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권 시장은 3월 25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진 차담회에서 “신입 직원뿐 아니라 기존 직원들의 피해사례도 있다고 하니 추가로 피해 사항을 들여다볼 것”이라며 “갑질 논란을 일으킨 개인의 문제를 떠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겠다”라고 말했다.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공무원에 대해선 “어린 친구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며 “관리자로서 직원들 하나하나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하는 데 그런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반성하고 제도 개선 방향을 찾겠다”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이순신도서관에 배치된 신입 여수시 공무원 B 씨 등 5명은 지난해 10월 시립도서관에 임용된 후 직속 상관인 A 팀장에게 지위 이용 욕설 폭언, 비인격적 언행, 인권 무시, 공개장소 비판, 모임 참여 강요, 부당 차별, 술자리 강제 참석 요구,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부당업무배제, 휴일 업무지시 등 갑질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신입 공무원 외에도 갑질 피해를 본 기존 직원 7명이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입 공무원들은 경위서에서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 우울감과 두려움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온 공무원 조직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고, 상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도 무너졌다고 했다. 팀장과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막막함이 먼저 앞섰고, 의원면직도 고민했다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극도의 우울감이 지속되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중간에 깨는 일이 많았다고도 했다.

시는 애초 A 팀장에 대해 엄중 경고, 진심 어린 사과, 보직 이동 등의 조치만 했을 뿐 사실상 징계가 아닌 서면 경고 조치를 하면서 부실 징계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언론 보도, 권익위 조사 등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대기 발령, 전남도 중징계 의결 요구 등의 조치에 나선 것은 직장 내 갑질 등의 문제에 대한 문제 인식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 여수시청 신입 공무원 5명이 직장 상사에게 폭언과 성희롱 등의 갑질 피해를 보았다며 여수시 감사실에 제출한 경위서.


시가 갑질 의혹의 당사자인 A 팀장에 대한 감사결과가 징계에 포함되지 않은 ‘경고’로 마무리하자 신입 직원들은 여수시청공무원노동조합에 지원을 요청, 공노조는 3월 6일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에 갑질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시는 결국 비판 여론에 떠밀려 이후 3월 30일 대기 발령, 4월 3일 전남도 중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지난 6일 전남도 인사위원회가 열려 최종 결과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4월 인사혁신처는 갑질로 징계가 의결된 경우 최소 ‘감봉’에 처하도록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권 시장은 이날 징계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피해사례가 추가 확인됐고, (해당 직원에 대한) 처분이 약하다 이런 말들이 많고 언론에서 자꾸 보도하고 하니까 변경이 될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권 시장은 “논란을 빚은 이순신도서관 팀장 갑질 사태는 조직 내 산재한 다양한 갈등요인을 바로 보여 준 사례”라며 “전남도 인사위원회의 최종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 내에서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업무지시 등 갑질 행위를 근절하고, 신·구세대 간 창의적이면서도 유연한 조직으로 변화하는데 시정책임자로서 솔선수범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여수시는 직원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갑질 행위나 공직 비위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공직자 고충 상담센터 운영 내실화를 통한 상시 운영으로 철저하게 조사키로 했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평가하는 ‘조직 화합 리더십 평가’를 연 2회 실시해 갑질 행위를 예방하는 견제 장치도 마련했다. 사서나 보건·농업·지도직 등 소수 직렬은 순환 보직제를 확대해 폐쇄적인 근무 형태를 쇄신할 방침이다.

회식 문화 개선과 연·병가, 대체휴무 보장, 업무시간 외 단톡방 사용 제한 등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기로 했다. 동호회 운영 활성화와 화합하는 직장 만들기 실천 서약, 소속 근무부서 홍보 영상 제작 및 SNS 홍보 등 조직 전반에 걸쳐 쇄신을 단행할 계획이다. 또 신규 공무원 워크숍을 전문교육 기관에 위탁해 공직 가치와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높이고, 멘토링 제도를 운영해 공직생활에 안착을 돕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을 6급에서 7급으로 확대해 준비된 중간리더로서 역량을 키운다.
 

▲ 여수시청. (사진=여수시 제공)


피해자 지원 등 대책 미흡·실효성도 의문…시장 의지·시스템 중요

하지만 권 시장이 갑질 논란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 당사자와 시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했지만,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개방형 감사담당관제 하에서도 통제되지 못했던 조직 내 갑질 문제가 고충 상담센터 내실화와 소수 직렬 보직 순환제 확대 등을 한다고 개선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갑질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이 언급되지 않는 등 개선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여수여성인권단체연합은 4월 2일 갑질 논란 관련 성명에서 “재발방지대책 등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의회가 함께 참여해 인권 조례를 제정하고 인권 침해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들은 “여수시인권위원회 등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인권교육과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수시의회 고용진 의원은 “갑질을 한 직장 상사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해 대응하는 여수시의 태도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문화의 문제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시 조직 자체의 인권의식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인권사고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하고, 피해자에 대한 심리상담과 치료,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인권보장위원회의 설치와 실질적인 권한 부여 등의 반영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 여수시의 개선 대책에서는 시민단체와 시의회의 제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수시는 공직자 고충 상담센터 운영 내실화와 내·외부망을 통한 상시 신고·접수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시스템이 실효를 거둘지 미지수다. 또, 건전한 공직문화 조성을 위해 실시하는 각종 교육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여수시가 그동안 배포한 공무원 교육 관련 보도자료 몇 개만 살펴보면 2018년 10월 18일 공직자 350여 명을 대상으로 성희롱,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등 직장 내 4대 폭력 예방 교육을 했다. 교육내용은 4대 폭력 예방을 위한 공직자의 자세와 사례, 폭력 대처방안과 처리절차, 문제 해결을 위한 인식전환 등이었다. 시는 상반기인 5월 2일에도 공무원 420여 명을 대상으로 4대 폭력 예방 교육을 했다. 시는 직장 내 4대 폭력 예방을 위해 성희롱 고충 상담창구와 고충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며 피해자 구제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수시는 또 지난해 2월 여수시청 본 청사, 문수·여서청사, 보건소 등에 ‘청렴 소통 우편함’을 설치했다. 민원인은 익명으로 공무원 부정부패행위를, 공무원은 상급자의 부당한 업무지시, 부당예산 집행 등을 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갑질 논란으로 교육의 실효성은 물론 고충 상담창구·고충심의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신고자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하는 시스템 강화도 요구된다. 피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를 받는 공무원이 신고자에 대해 눈치채 되레 조직 분위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자의 신원 노출을 줄이고, 감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 기관이 제보를 받아 이를 다시 해당 기관에 알려주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믿을 수 있는 시민단체 또는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 기관에 제보나 신고를 한 뒤 이 내용을 검증해 해당 기관 감사관실에 외부 기관이 알려주는 방식이다. 그러면 제보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고, 부실한 감사에 대해서는 상시 지적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내놓는 사후약방문식 대책보다는 단체장과 간부급 직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갑질·관행 근절 의지, 원칙에 입각한 징계로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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