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원씨 "모든 배상을 하겠다는 회사를 믿었다. 반복되는 수술과 치료에 정신은 피폐해졌고 2년 후엔 믿었던 회사의 지원이 끊겼다"

7년 전 여수산단 한 업체에서 작업하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양지원(36)씨. 그는 이날 사고로 인해 절망의 늪에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책임 회사의 이중적 태도에 더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지원씨의 7년간의 행적과 현실을 쫓아 산업재해로 고통 받는 청년 노동자의 현실을 취재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양지원씨의 7년 전 그날
#2. 양지원·어머니 인터뷰 "고통의 세월 보낸다" 
#3. 사고 회사의 이중성, 사고 처리 약속 지키지 않아 
#4. 정치인들, 청년 노동자의 현실 아는가 
#5. 청년이 본 청년 노동 현장은

▲제작=유승완 대학생 인턴기자
▲제작=유승완 대학생 인턴기자

? 아침에는 더 안 걸어져 아들?” “엄마 나 자고 일어나면 혈액 순환이 안 돼...” 다리의 혈관이 모두 끊어져 미세혈관으로 겨우 걷는 양지원씨 가족 아침 대화다

양지원씨는 사고를 당한 후 4차례 수술과 4년 간 입원 치료, 그리고 현재까지 재활 중에 있다아직도 그날의 사건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라 밤마다 괴로운 꿈을 꾼다. 갑자기 떨어진 3톤에 달하는 중량물은 피할 수 없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덮쳤다. 맨정신에 자신의 살이 뜯기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 7년 전 그날 일상은 처참히 무너졌다

그는 모든 배상을 하겠다는 회사를 믿었다. 반복 되는 수술과 치료에 정신은 피폐해졌고 설상가상으로 2년 후엔 믿었던 회사의 지원마저 끊겼다

전화기를 붙들고 연락만 기다리길 몇 달. 그가 소송을 준비했을 땐 소멸시효를 놓고 고민이 깊어졌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양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다시 떠올리기 괴로울 기억에도 그날의 아픔을 전했다. 양지원씨와 어머니가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Q. 병원 입원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어머니= “제가 간병을 했죠. 2년 동안 침대에서 못 일어나서 똥오줌 다 받아주고... 하루에 두 번씩 투석 받고 그랬어요. 한 달을 넘어서야 혈액 수치가 잡혔다고 그러더라고요.”

다리가 염증이 있었는데 치료 못하고 신장에만 매달려서 염증이 더 커지고... 심부전도 오고 다리가 근육이 다 터졌어요. 의사들이 부은 살집을 다 자르더라고요.  고환 두 쪽이 다 부어서 그게 무거우니까 수건을 밑에 받쳐서 고무줄로 묶어두고 했었어요.”

당시 양씨는 우측 다리 개방성 골절, 우측 대퇴부 돌기간 골절, 폐쇄성, 우측 원위부 비골골절, 폐쇄성, 가로무늬근 융해증, 상세불명의 급성신부전이란 판명을 받았다. 광주 전남대학병원에서 수술이 불가하다 판단이 났고, 개복 상태로 서울마이크로병원에 옮겨졌다가 다시 광주 전남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Q. 병원에 계실 때 하루하루가 어떠셨을까요?

양지원=“ 4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하면서... 갇혀 있었잖아요.”

저도 젊은 나이였고. 제 다리 상태를 막 정신적으로 우울증, 대인기피증, 자존감 낮아지고. 수술하는데 급해서... 수술하고 재활하기를 반복하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죠.”

치료 받는 동안 정신과와 병행 치료를 했는데, 입원했던 병원에 정신과가 없어서 왔다갔다 하기가 많이 불편했어요. 혼자 많이 울기도 했고... 4년 동안... 수술과 입원이 반복되면서 나 자신과의 싸움을 했어요.”

소송을 준비하거나 뭔가를 공부할 정신없이 제 상처를 들여다보기 바빴죠. 거동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갇혀있는 것만 같은 답답한 기분이 들고. 내가 일어서서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 했어요. 어떤 병원이 나에게 좋은지, 어떤 수술이 좋은지 찾기만...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바빴죠.”

어머니= “사건 후에 우리아들 성격이 너무 많이 바뀌었어요. 뭐에 쫓겨 다니는 사람처럼 자잘한 것에도 스트레스 받고, 말도 함부로 하고, 물건도 던지고... 원래는 밝고 사람들이랑도 다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애였는데...”

양지원씨는 퇴원 이후에도 2주에 한 번 간격으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현재 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이다. 또한 다친 후 다소 난폭해지고 극단적이게 변화된 성격 때문에 사회에 오며 사람들과 부딪힘을 갖게 되어 남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양지원씨와 오금순(어머니)씨가 본지 대학생 인턴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뉴스탑전남)
▲양지원씨와 오금순(어머니)씨가 본지 대학생 인턴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뉴스탑전남)

Q. 사건 후 경찰조사, 근로복지공단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나요?

어머니=“병원에 입원하고 한 며칠 지나니까 유00라는 경찰이 와서 우리 아들 침대에 눕혀놓고 즈그들이 조사를 했어요. 얘는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 전남대학병원에 와서 조사를 받아 가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사고회사가 과실치상죄로 500만 원 벌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양지원=“대수술 끝나고 비몽사몽 한 상태였는데 조사를 받아갔어요. 안전교육을 했느냐 묻길래 안전교육을 했다고 답했어요. 제가 맡은 보직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은 거니까요. 근데 그 질문은 제가 맡지 않은 보직에 대한 안전 교육이었죠.”

어머니=“신호수에 대한 안전교육을 했냐고 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우리 아들은 자기가 받은 안전교육을 이야길 했죠.”

양지원=“저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 받은 적 없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 받은 거로는 Y기술 입장만 적혀 있더라고요. 그리고 서류를 보시면 자신들은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돼 있는데 다 거짓말이고요.”  "안전교육 받은 적 없고 다 거짓말이에요"

“제 입장은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제 보직에 대한 안전 교육을 받은 건 사실이에요, 근데 다른 보직에 대한 안전교육은 받은 적이 전혀 없고, 자신들은 아침에 실시했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실시한 적도 없어요.”

다 거짓말인거죠. 6년 전 일이니까 제 기억이 잘못 된 줄 알았죠. 그래서 제 동료들한테도 물어봤어요. 우리 오전에 교육 받았냐고, 그러니까 모두 그런 적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Q. 사고 이후 회사 측으로부터 받은 조치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양지원=“광주 전대병원에 있을 때, 어머니가 병간호를 하셨어요. 침실에서 5~6개월동안 소,대변을 해결했는데, 기저귀 용품 살 정도의 생활비만 받았고, 어머니께 원룸을 얻어주셨어요.”

근데 더 큰 병원이 필요해 서울로 가는 바람에 그마저도 얼마 못 썼죠. 이후에 어머니도 간병생활이 길어지면서 몸이 안 좋아지시니, 간병비와 병원비를 줬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의 의무를 다 했다며 나몰라라 하기 시작한 거죠.” 

그 쯤 부터 간병도 쓰지 않았어요. 목발을 이용해서 조금씩 걸을 수 있었거든요. 경비나 생활비처럼 자잘자잘한 것은 원하지도 않습니다. 큰 병원 수술비, 치료비만 달란 건데도 해주지 않았죠.”

Y 기술은 2015512~ 20173월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양지원씨와의 약속을 이행했다. 그러나 2년후 그들은 도의적인 책임을 다했다며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았다.

Q. 2017년부터 회사의 지원이 아예 안 나온 건가요?

어머니= “네 연락이 없었어요. 저희가 걸었더니 자신들은 도의적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 나중에 소송 걸어라라고 말하더라고요. 2년 동안은 병원비 비급여 부분만 계산을 해줬죠.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어, 간병비로 나 고생한다고 생활비 2-30 만원 정도는 나왔어요.” “20173월 후로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어요.”

Q. 현재 경제 유지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양지원=“노동력이 안 되니 경제활동도 안돼요. 약속했던 부분들을 안 지켜주고... 지금은 산재장애등급이 나와서 국가에서 등급 안의 연금 제도로 생활을 하고 있어요.”

Q.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현재 본인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양지원=“평범하게 살았을 거 같아요. 일 열심히 하고, 결혼도 하고... 이젠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죠.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죠. 어쨌든 받아들이건 받아들여야 하니까.”

Q. 양씨가 말하는 평범한 삶이란?

양지원=평범한 삶... 그냥 일 열심히 하고 가정을 꾸리고, 뭐 그런 거죠. 아시잖아요...”

Q. 현재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 해주세요.

양지원=“몸이 아예 불편하지 않게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을 알아요. 그래도 이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듭니다. 이제는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라 결혼도 해야 하지만,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몸이 불편하지 않을 때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을 잘 아는데 말이죠. 평범한 삶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도 지금은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순 없으니까요. ”

임수정·김윤지 대학생 인턴기자  yunjixy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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