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 성장의 그늘…돌산 자연 무차별 훼손

엘니뇨와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
영국 과학자, “난개발과 환경오염 일삼는 인간 탐욕 때문”

1978년에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물체로 정의한 ‘가이아이론’을 발표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이다.

러브록에 따르면 생물·대기·바다·육지 등으로 이뤄진 지구는 이 구성 요소들이 상호 작용해 생물이 살아가는 데 가장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는 자기조절 시스템을 갖춘 거대한 체계다. 녹색식물과 박테리아 등 생물체가 지구 대기권의 산소와 메탄가스를 항상 일정한 농도로 조절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그는 2006년 자신의 이론을 30년 만에 대폭 수정해 ‘가이아의 복수’(한국어판 2008년 발간)라는 책을 내놓는다. 그는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 때문에 ‘가이아’ 지구는 회복 불가능하며 인류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며 기존 주장을 뒤집었다. 지구의 ‘자정(自淨)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이산화탄소 배출과 오존층 파괴 등 환경오염을 저질러온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이번 세기 안에 지구온난화로 대재앙이 올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일생일대 가설을 수정할 만큼 지구의 위기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말 그대로 러브록은 마지막으로 인류에게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 여수시 돌산에 펜션을 짓기 위해 터 닦기를 하고 있다.

소설 <제3 인류>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지구적 차원의 자연재해는 모두가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일삼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며 러브록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구는 인간이 자신에게 도발할 때마다 응답한다. 인간이 땅가죽에서 핵폭탄을 터뜨리면 지진으로 대답하고, 인간이 지구의 검은 피인 석유를 유독가스로 변화시켜 생명을 질식시키면 지구는 기온상승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은 이미 엘니뇨(적도 해수 온도 상승)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 폭염과 맹추위, 폭설, 초강력 태풍, 녹고 있는 북극 해빙 등 몸살을 앓고 있다.

▲ 여수시 돌산에 펜션을 짓기 위해 터 닦기를 하고 있다. (사진 시민제공)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갈수록 여름은 폭염으로 전국이 펄펄 끓고 있다. 2015년 발간된 한국의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이 1999년까지 50년 동안 10년에 0.23도 올랐다고 분석했다.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엔 2배 가까운 0.5도 상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난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40년 폭염에 의한 서울 지역의 사망자는 10만 명당 1.5명으로 예상했다. 지금보다 2배 이상 많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지역에 따라 큰 기온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기온이 높은 곳은 대부분 고층빌딩이 많은 강남 등의 지역인데 건물에서 발산되는 열이 많은 데다 빌딩숲이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기온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무분별한 도시화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지나친 개발과 도시 지향적 생활방식이 도시를 찜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도 결국 지구환경 변화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지구 온난화가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면서 박쥐의 활동 영역에 영향을 끼쳐 변종 바이러스가 낙타를 거쳐 퍼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여수시 돌산 해변에 들어서고 있는 펜션들.
▲ 여수시 돌산 산자락에 펜션이 들어설 부지.

여수시, 개발 위주의 성장 일변도 정책 난개발에 속수무책
돌산 숙박시설 우후죽순 생겨 산림·경관훼손 심각 대책 시급

이처럼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지구촌의 먼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도시의 이야기다. 온실가스 저감, 녹지 확대 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지만 사실 온난화에 대한 정부와 여수시, 시민의 인식은 여전히 안이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기후보호시범도시인 여수시는 각종 개발에 있어 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어느 도시보다 선도적인 정책을 펴 나가야 할 의무감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여수시의 정책 방향을 보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며 개발 위주의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사실상 난개발에 속수무책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기 직전이다.

국내 최대 중화학공장이 밀집한 여수국가산단은 지난해 공장 증설을 위해 66만㎡의 녹지가 해제됐다. 투자규모 2조6000억 원에 지역 고용인원 400여명 등의 경제적 효과가 강조되고 있지만 대기 중 발암물질과 온실가스 배출을 우려하며 녹지 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더욱이 사계절 인기 관광지로 떠오른 여수는 개발 붐이 한창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의 훼손 등을 방지하고 체계적인 개발행위를 유도하는 제도가 미흡한 탓에 도심 해안가와 돌산·금오도 등에 숙박·상가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 여수시 돌산에 펜션을 짓기 위해 터 닦기를 하고 있다.
▲ 여수시 돌산 산자락에 들어선 펜션들.

여수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이후 건축 인·허가 건수를 집계한 결과 2014년 1331건, 2015년 1431건, 2016년 1543건으로 매년 100건 이상씩 증가했다. 2년 연속 13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등 여수를 찾는 사람이 늘면서 숙박시설과 같은 상업시설의 건축이 증가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지난해 돌산읍에 내준 건축 허가는 모두 129건으로 전년도의 86건보다 50% 증가했다. 이 중 60%는 숙박시설과 소매점, 음식점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1·2종 생활 근린시설 등이 전체 건축 허가 건수를 차지하고 있다.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해 펜션 업을 할 수 있는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을 포함하면 거의 90% 이상이 숙박시설과 상업용 시설이다.

이처럼 돌산에 펜션 등 숙박시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것은 여수가 수년 전부터 인기 관광지로 주목받으면서부터다. 지난해 전남에서 가장 많은 땅값 상승률을 보인 곳은 돌산읍이었다. 돌산과 경도 인근의 봉산동과 남산동도 확연한 오름세를 보였다.

여기에다 미래에셋이 최근 인근 경도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해 아시아 최고 수준의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한 이후 돌산에 대한 투자 열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경도와 돌산도를 연결하는 편도 2차선, 총연장 1.9㎞(접속도로 포함)의 연륙교 건립 사업도 숙박시설 유치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여건이 좋아지면서 온수 수영장을 비롯해 스파, 와인바, 바비큐장 등 최고급 시설을 갖춘 고가의 펜션도 돌산에 잇따라 들어섰다. 숙박료가 하룻밤에 50만원이 넘는데도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주중에 80% 정도, 주말에는 100%의 예약률을 보일 만큼 이용자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고급 펜션이 지난 2년 사이 10여 개가 들어섰고 해안가를 중심으로 건축 중인 곳도 10여 개에 이른다. 개발 붐을 타고 돌산의 펜션 등 숙박시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여수시 돌산 산자락에 펜션이 들어설 부지.
▲ 여수시 돌산의 펜션 건축 공사.

건축경기와 부동산 경기는 활성화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난개발로 인한 환경과 경관 훼손, 집값·물가 상승, 교통난 등의 문제가 지역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행정은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특히 돌산의 경관이 좋은 해안이나 절벽, 산자락 등이 잘려나간 자리에는 펜션 등 숙박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난개발에 대한 우려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돌산 일대를 돌아봤다.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명당자리’와 도로가에는 이미 영업 중이거나 공사 중인 펜션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었다. 일부 숙박시설은 공사가 중단된 채 건축 자재 등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시설을 짓지 못하고 터 닦기 공사만 진행된 곳도 목격됐다. 산자락을 절개해 시설 부지를 조성해 놓고 분양을 하는 곳도 있었으며, 전망 좋은 바닷가의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개발하는 곳도 있었다.

돌산 주민 김모씨는 여수시청 홈페이지에 글을 게재해 돌산지역 산림 훼손이 심각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씨는 “요즘 들어 돌산지역에 우후죽순 건축되고 있는 펜션을 보게 된다”며 “개인 소유라 할지라도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십 그루 베어져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씨는 “펜션에서 숙박하는 분들은 좋을지 몰라도 주변의 산과 바다의 경관은 참담하리 만치 파괴돼 가고 있는데, 시민단체와 환경단체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어서 돌산에 거주하는 제가 궁금하고 안타까워서 (시에)질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림을 훼손하는데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그리고 적법한 지역에 들어서는 것인지도 물었다.

이에 대해 여수시는 “최근 돌산읍 동백골 인근 소미산 일대와 계동마을 인근 산림에 건축공사가 급증함에 따라 산림훼손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으나, 환경보호 명분으로 무조건적인 건축허가 불허가 처분은 개인 사유재산권 행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될 수도 있는 사항이다”고 원칙적으로 답변했다.

▲ 여수시 돌산에 들어서고 있는 펜션. 공사가 중단된 채 건축 자재 등이 널브러져 있다.

또한, 펜션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기저기 펜션이 난립하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수익률 악화로 이어져 펜션업계가 자칫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여수시가 관광시설 유치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허가과정에서 더욱 꼼꼼하고 엄격하게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수참여연대 임영찬 공동대표는 “돌산에 펜션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경관을 해치고 자연을 훼손하는 등 난개발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외지 자본이 지역의 펜션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여수시가 대책이 없다고 손 놓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면밀한 대책과 장기적인 도시계획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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