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설립 논의가 필요하다]④ 아이에서부터 어르신까지 돌봄 안전망이 갈수록 촘촘해지는 데 여수 문화예술인들이 예술적 자존심을 지키며 창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회적 안전망 구축은 요원한 일일까. 행정이 한계를 드러낸다면 이를 나눠서 전담하고 지역의 문화예술을 일구는 이들을 돌볼 오롯한 기관이 절실해진다.

▲2021 여수국제미술제 전시 모습. (사진=여수국제미술제 홈페이지)
▲2021 여수국제미술제 전시 모습. (사진=여수국제미술제 홈페이지)

예술인복지법 제정 10년, 후속 조치 손 놓은 여수시

지난 2011년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으나 여수시는 후속 조치 마련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수시가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증진과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실태와 창작 여건 등에 대한 실태조사가 없다보니 이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예술인의 활동, 환경, 노동, 생활‧복지, 예술정책 만족도, 평균소득 등에 대한 실태조사는 문화예술인 복지와 정책을 수립하고 방향을 잡는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예술인은 “여수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생활은 물론 예술 활동이 어려운 실정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예술인복지법 제정 이후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역 문화예술계가 실상 나아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2019년 여수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촉 및 회의 모습. (사진=여수시)
2019년 여수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촉 및 회의 모습. (사진=여수시)

여수시는 2015년 8월 문화예술진흥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기본목표 및 방향 제시, 문화도시‧문화거리 등 지역문화시설의 적정 개발을 위한 계획, 문화와 관광산업의 연계‧발전,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 강구 등에 대해 중‧단기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국어·인문학 관련 사업, 우수 예술지·문학지 발간 및 백일장 대회, 문학상·미술상 및 음악상, 청소년·노인 및 장애인 예술 활동 지원 사업, 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연예·국악·사진, 전시‧공연‧기획‧연구 활동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사항으로만 국한돼 있을 뿐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호, 예술인의 활동 여건을 개선할 할 수 있는 복지 증진 지원 근거는 없다. 일부 지자체가 예술인 복지 증진 조례를 제정하거나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등 제도개선에 나서는 것과는 달리 여수시는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한 예술인은 “정부나 다른 지자체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복지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이나 개선 작업에 나서는데 여수시는 움직임조차 없다. 문화예술인들도 먹고 살기 바빠 별로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남도 시도무형문화재 제1호 ‘거문도뱃노래’ 공연 모습. (사진=여수시)
전남도 시도무형문화재 제1호 ‘거문도뱃노래’ 공연 모습. (사진=여수시)

순천‧광양 등 예술인 복지증진 조례 제정 확산

전남도의회는 지난 2018년 2월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도지사는 3년마다 예술인 복지증진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지역 예술인의 복지증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예술인의 근로환경과 권리 현황 등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도록 했다. 예술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으로 창작 공간 지원과 예술 활동 후원, 재정 지원 등도 규정했다. 2020년 조례 일부 개정을 통해 예술인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및 피해 구제 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긴급 복지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순천시의회는 지난 2020년 11월, 광양시의회는 지난해 12월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주요 내용은 시장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증진에 관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5년 마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기본방향 및 추진목표, 복지 증진 사업 및 정책 개발, 재원조달 방안 등의 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하도록 했으며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과 근무개선 사업, 처우개선, 역량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려지역아동센터의 여수청소년전통연희단 ‘굴렁쇠놀이패’는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 센터 아이들이 국악고에 진학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한려지역아동센터의 여수청소년전통연희단 ‘굴렁쇠놀이패’는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 센터 아이들이 국악고에 진학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광양의 경우 실효성 있는 예술인 복지증진 정책 마련을 위해 예술인의 복지와 창작 환경에 관한 실태조사도 실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증진계획은 문화예술진흥 조례에 따른 중기 종합계획과 통합해 수립할 수 있도록 했다.

아산시의회는 지난해 4월 문화예술진흥 조례에 ‘시장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증진에 관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5년마다 예술인 권리‧지위 향상을 위한 기본방향과 복지증진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 및 권리 보호, 생활안정, 예술 활동 여건 개선 등을 위한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

아산시의회는 아예 예술인복지법을 근거로 별도의 복지증진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조례를 제정하기보다 현재 시행중인 문화예술진흥 조례 개정을 통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아산시와 의견이 갈리면서 조례가 상임위서 무산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이 조례안은 좀 더 구체적이다. 시장의 책무, 예술인복지증진계획 수립·시행, 예술인 복지증진 사업, 예술인복지증진위원회 설치, 예술인복지지원센터 설치·운영 등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021 여수밤바다 낭만유튜버스킹 촬영 모습. (사진=여수시)
▲2021 여수밤바다 낭만유튜버스킹 촬영 모습. (사진=여수시)

대구 남구의회, 예술인 권익 개선 조례 제정 ‘주목’

대구광역시 남구의회는 문화예술인이 연습 기간 들인 노력에도 대가를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해 주목을 끈다. 구청장은 지역문화예술 진흥과 예술인의 복지증진을 위해 5년마다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예술인의 권리 및 지위 향상을 위한 기본방향 ▲예술인의 창작활동 지원 사업 계획 ▲예술인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 계획 ▲예술인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및 훈련 사업 계획 ▲예술인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및 피해 구제 지원 사업 계획 등이다.

조례는 또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예술인은 문화도시 실현과 구민의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공헌을 하는 존재로서 정당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 ▲모든 예술인은 자유롭게 예술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예술 활동의 성과를 통하여 정당한 정신적, 물질적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모든 예술인은 유형·무형의 이익 제공이나 불이익의 위협을 통하여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주목할 것은 지난해 일부 개정을 통해 구청이 예술인과 공연 계약을 할 때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준출연계약서를 쓰도록 했다. 그동안 계약서를 안 쓰는 경우가 많았고 쓰더라도 허술해서 조례에 표준출연계약서를 명시한 것이다.
 

여수지역 극단 파도소리의 ‘굿모닝 시어터’ 공연 모습. 이 작품은 2017년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단체상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사진=여수시)
여수지역 극단 파도소리의 ‘굿모닝 시어터’ 공연 모습. 이 작품은 2017년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단체상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사진=여수시)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문화예술인들은 행사가 취소되면 작품을 준비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연이나 전시 등 행사에 따라 작품 내용이 달라지고 작품을 준비하는 데 연습 등 길게는 수개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공연이나 전시가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땀 흘려 연습해온 작품을 선보일 수 없을뿐더러 그동안 수고한 대가도 받지 못하지만 사실상 ‘을’의 처지가 많은 예술인 입장에서는 이의제기가 쉽지 않다.

조례에는 ▲계약 금액 ▲계약 기간‧변경‧해지 및 손해배상에 관한 사항 ▲계약 당사자의 권리 및 의무에 관한 사항 ▲업무‧과업의 내용, 시간 및 장소 등 용역의 범위에 관한 사항 ▲분쟁해결에 관한 사항 등이 담겨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출연료를 1차, 2차에 나눠 주기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더라도 1차 출연료 그러니까 연습 기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발주자의 사유로 공연 일정이 초과하면 공연자가 초과 수당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조례가 구청과 계약한 공연에만 해당되는 한계가 있지만, 이른바 ‘을’의 위치에서 행사 주최 측에 당연한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었던 예술인의 권익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다른 지자체의 조례와 차이는 또 있다. 구청장은 예술인의 창작활동에 대한 후원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예술인 및 예술인 단체와 이를 후원하는 개인 또는 기관이나 단체 간의 연계 협력시스템을 구축 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여수시 신기동 갤러리노마드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한 가족이 퍼즐카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탑전남DB)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여수시 신기동 갤러리노마드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한 가족이 퍼즐카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탑전남DB)

문화예술인 여수형 안전망 구축은 요원한 일?

일부에서는 지원에만 의존하다 보면 문화예술 생산자인 문화예술인들의 자생력을 약화할 수 있고 문화재단 등 공공문화기관이 정부나 지자체의 위탁사업에 치중돼 자체 기획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한다. 이는 단발성 지원, 경쟁 심화, 본래의 목적과 취지 상실, 중장기 로드맵 부재 등에 따른 부작용 우려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주요 구성요소이자 문화예술 자산이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이라면 이에 대한 지원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로 인해 시민이 누리는 이익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에서부터 어르신까지 돌봄 안전망이 갈수록 촘촘해지는 데 여수 문화예술인들이 예술적 자존심을 지키며 창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회적 안전망 구축은 요원한 일일까. 먼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촘촘한 실태 조사를 위한 근거 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 문화예술계의 토양을 기름지게 하지는 못할망정 척박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여수시 행정이 한계를 드러낸다면 이를 나눠서 전담하고 지역의 문화예술을 일구는 이들을 돌볼 오롯한 기관이 절실해진다.
 

지난해 10월 19일 여순사건 73주년 합동위령제 및 추념식에서 유족 2세인 박금만 작가가 그린 여순사건 역사화를 시민이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스탑전남DB)
지난해 10월 19일 여순사건 73주년 합동위령제 및 추념식에서 유족 2세인 박금만 작가가 그린 여순사건 역사화를 시민이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스탑전남DB)

문화예술인들의 노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과 역량 약화, 전문성 부족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문화예술 행정의 구태, 문화예술 대학의 부재, 청년 예술가들의 지역 이탈, 일자리 부족 등으로 여수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사실. 이를 모르는 것인지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지는 문화예술인들이 지역에 거주하며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도시, 문화예술인이 일할 기회가 많은 도시,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도시를 누가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자문(自問)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보다는 사업 지원 중심인 여수시 문화예술 관련 조례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정산을 위해 오늘도 얼마나 서류에 시달리고 있는지, 창작 활동에 전념해야 할 시간에 누구한테 어떻게 로비(?) 해서 지원금을 받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참담함을 외면케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제정된 ‘여수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조례’ 또한 사람이 밀려나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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