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어린이병원’ 추진 사실상 후퇴…이마저도 쉽지 않을 듯
시 “현재 참여 의향 지역 병‧의원 없고 실효성 떨어져 고민”
인수위, 여수시에 “전문의‧간호사 인건비 등 예산 지원 검토”

지난 7월 ‘남해안 거점도시 미항 여수’를 비전으로 내세운 민선 8기 정기명 여수시장의 임기가 시작됐다. 정 시장 앞에는 해결해야 할 굵직한 현안과 시민에게 약속한 83개 공약의 차질 없는 이행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정 시장의 주요 공약을 점검하고 여수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편집자 주-
 

정기명 여수시장이 변호사 시절인 지난 2월 8일 지역의 영유아 부모 초청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정기명 변호사 사무실 제공)
정기명 여수시장이 변호사 시절인 지난 2월 8일 지역의 영유아 부모 초청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정기명 변호사 사무실 제공)

아이가 야간에 갑자기 아프면…고통은 오롯이 부모 몫

인구 28만의 전남 여수시에 밤이나 주말 사이 영유아들이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진료가 가능한 소아전문 응급병‧의원이 없어 부모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지역의 소아과 병·의원은 오후 6~7시까지만 운영돼 야간 진료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지역의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갑자기 열만 올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심야 시간 아이가 아플 경우 마음이 급한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반 응급실로 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겪는 고통은 오롯이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몫이다.

부모 입장에선 의료비 부담도 덜고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기를 원하지만 지역의 의원은 물론 종합병원 내 소아청소년과도 전문의와 장비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야간이나 휴일에 아이가 아플 때 일반 응급실이나 타 지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하는 불편 해소와 골든타임 확보가 필요한 실정이다.

영유아는 6세 이하 어린이를 말하는데 지난 7월 기준 여수시 영유아 수는 9510명이다. 현재로선 매일 밤 이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인데, 공공 의료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정주여건 개선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여수시청 홈페이지 캡처.
여수시청 홈페이지 캡처.

정기명 여수시장은 후보 시절 ‘야간 영유아 응급의료센터 유치’를 공약했다. 하지만 인수위의 공약 검토 과정에서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으로 변경되면서 후퇴했다.

인수위는 ‘야간 영유아 응급의료센터’는 의사, 간호사 등 별도 인력이 필요해 예산이 과다 소요된다는 점에서 센터 유치보다 기존 병원을 활용한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을 제안했다.

인수위는 단기 대응 방안으로 기존 응급실 의료기관을 활용한 야간 소아청소년과 진료 시간 연장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타 시·군 영유아 응급의료센터 병원의 운영실태 등을 파악하고 소아과 전문의와 간호사 인건비 등 예산 지원 검토를 주문했다.

중·기 방안으로는 제일병원, 문화병원 등의 달빛어린이병원 운영 참여를 유도하고 2025년 웅천 이전 신축 예정인 여수전남병원 영유아 야간 응급센터 도입͗ 구축 협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야간 영유아 응급의료센터 유치 대신 차선책으로 선택한 달빛어린이병원 운영 또한 현실은 녹녹치 않다. 당장 여수시는 시장 공약이라 추진은 해야겠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어 현실적 한계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보건복지부의 달빛어린이병원 홍보 자료.
보건복지부의 달빛어린이병원 홍보 자료.

소아환자 야간‧휴일 진료 ‘달빛어린이병원’
전국 30곳 불과…지역 병의원 참여 불투명

2014년 도입된 달빛어린이병원은 18세 이하 소아 경증환자가 평일 야간과 휴일에 문을 연 병원이 없어 겪는 불편과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면서 겪는 진료비 부담 등을 줄여주고 신속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평일 야간·휴일 소아 경증환자 진료기관이다.

평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토·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소아과 전문의가 진료해 일반 병원 응급실과 다르다. 달빛어린이병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서울 4곳, 부산 3곳, 대구 2곳, 인천 1곳, 대전 3곳, 경기 4곳, 경남 5곳, 충북·전북·제주 각각 2곳, 강원과 충남 각각 1곳 등 30곳이 운영 중이다. 전남, 광주, 울산, 세종, 경북은 한 곳도 없다.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이 8년째를 맞고 있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무엇보다 낮은 수익성과 의료진 피로도 등을 이유로 지역 병‧의원 참여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기존 참여 병원도 소아과 전문의가 병원을 옮기면 진료가 중단되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인력 확보와 운영비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려면 야간·휴일 근무를 하는 의료진을 확보해야 하는데 평일 자정까지 근무하려는 의료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야간수가를 적용한다 해도 현실적인 운영비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까지 지원금을 주다 지난해부터 ‘야간수가’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병‧의원의 참여율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의료기관들이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의 달빛어린이집병원 정책 추진 당시 이에 반대하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참여한 병원에게 자격정지 등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자체 규정을 만들고, 의사회 홈페이지 이용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참여 병원들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의사회는 이 사업이 일정 규모 이상의 중대형 병원급 의료기관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며 1차 의료기관인 동네병원을 붕괴시키는 등 불공정한 정책이라며 반대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이 사업에 참여한 회원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지만 소신 있게 나설 소아청소년과 병‧의원들이 실제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달빛어린이병원 홍보 자료.
보건복지부의 달빛어린이병원 홍보 자료.

여수지역 병·의원 중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는 병원은 5개소, 의원은 6개소인데 전문의와 간호사 등 인력 확보와 고가 특수의료장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인수위는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을 위해 지자체의 예산 지원 등 병원 부담 경감과 사업 필요성에 대한 설명회 등을 통한 참여 유도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여수시보건소 보건행정과 관계자는 “대도시에서 운영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모니터링 해보니 정책 시행 초기에는 정부가 인건비 등을 지원했는데 지금은 지원이 끊기다보니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에 홍보를 통해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현재 참여 의향이 있는 병‧의원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야간에 운영을 해도 일반 응급실로 많이 가다보니 실제 이용자가가 많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시도 고민”이라면서 “공약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영유아 자녀를 둔 A씨는 “여수의 영유아 의료 수준이 인근의 순천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순천지역 소아청소년과로 많이 간다. 부모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 아이를 믿고 키울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인구 감소 대책”이라며 “밤에도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전문 병원이 여수에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달빛어린이병원 운영 시간이 종료되는 0시 이후의 진료 방안과 야간에도 문을 여는 병‧의원 근처 약국을 확보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서산의료원 홈페이지. 서산시 영유아 야간 진료센터는 서산의료원이 운영한다. 서산시가 의료진 인건비(연간 약 8억 원)을 지원한다.
서산의료원 홈페이지. 서산시 영유아 야간 진료센터는 서산의료원이 운영한다. 서산시가 의료진 인건비(연간 약 8억 원)을 지원한다.

경주‧서산시, 영유아 야간 진료센터 운영 ‘호응’

경북 경주시는 동국대 경주병원에 의료진의 인건비(연간 약 8억 원) 일부를 지원해 ‘영유아 야간 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4시간 소아청소년과 전문 의료진 12명이 근무하고 있다. 인근 포항‧울산 등 다른 지역 영유아 환자뿐만 아니라 경주를 방문한 관광객 방문 비중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경주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지방 병원 근무기피, 저출산 및 저수가로 인한 병원 경영 이유 등으로 2016년 6월 야간 소아응급환자 진료를 중단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야간에 대도시 병원을 이용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고 특히 소아응급 환자들이 골든타임을 놓쳐 생명을 위협받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해 2월 개소한 충남 서산시 영유아 야간 진료센터는 서산의료원이 운영한다. 서산시가 의료진 인건비(연간 약 8억 원)을 지원한다. 충남 최초로 야간·공휴일에도 진료가 가능해 타 시‧군의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다. 당진, 태안 등 인근 지역 영유아들도 이용한다. 365일 전문의와 간호사가 교대로 상주하며 운영된다.

대학병원이나 공공의료원이 없는 여수시로서는 영유아 야간 진료센터 운영이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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