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수산박물관 유치전에 뛰어든 여수시가 1차 심사에서 탈락한 원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2년 전 관련 용역을 해놓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등 안일한 인식과 준비 부족, 차별화된 전략 부재 등 총체적 부실지적이 제기된다.

▲완도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예정부지. (자료=완도군)
▲완도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예정부지. (자료=완도군)

7개 시‧군 평가 결과 완도군 최종 선정

전액 국비가 투입되는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유치전에 나섰다가 1차 심사에서 탈락의 수모를 겪은 전남 여수시가 2년 전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용역’을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여수시의 대응과 유치 전략방안이 담겼는데 사실상 무용지물로 캐비닛 용역에 그쳤다는 지적을 비할 수 없게 됐다. 과거 20년 전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유치를 위해 범시민 유치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유치에 나선 경험이 있고 특히 박물관 유치를 위한 용역을 해놓고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역 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립해양수산박물관은 전시관, 체험관, 연구시설, 수장시설 등을 갖춘 해양문화 복합시설로, 사업비는 1245억 원이 투입되고 자치단체는 부지 4만2500㎡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국립해양수산박물관 대상지 선정위원회는 17일 도청 기자실에서 전남의 해양수산 역사와 문화, 생태계를 담을 복합문화시설인 국립해양수산박물관이 완도에 들어선다고 발표했다. 여수, 신안 등 도내 7개의 지역이 뛰어든 유치 경쟁은 발표 평가를 거쳐 보성, 신안, 완도 3개로 압축됐고 이후 현장실사를 거쳐 완도군이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다.

선정위원회는 완도가 경쟁 후보인 신안과 보성보다 접근성과 연계성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난대수목원에 이어 또다시 대형 국립 시설 유치에 성공한 완도군은 관광 효과 극대화를 노릴 수 있게 됐다. 해수부는 2026년 개관을 목표로 내년까지 기본계획 등의 수립과 예비타당성 조사 심의를 마치고 2024년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유치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던 여수시는 1차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박물관 유치를 통해 박람회장 사후활용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던 지역 사회는 유치 실패 소식이 전해지면서 허탈감에 빠졌다.
 

▲ 여수시의회 김영규 의장, 정기명 여수시장, 강용주 여수세계박람회재단이사장이 지난 4일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여수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여수시)
▲ 여수시의회 김영규 의장, 정기명 여수시장, 강용주 여수세계박람회재단이사장이 지난 4일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여수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여수시)

안일한 인식‧차별화된 유치 전략 부재

여수시가 3배수 안에조차 들지 못한 것은 안일한 인식과 준비 부족, 입지여건 등만을 내세운 차별화된 전략 부재로 유치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적 거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번 공모 사업의 평가 기준은 추진요건 30점, 입지여건 40점, 균형발전 10점, 해양수산자원 20점이다. 시도 이에 맞춰 준비했지만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평가 점수가 가장 높은 입지여건과 추진요건은 여수시가 다른 경쟁 도시에 비해 우위를 점하거나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균형발전과 해양수산자원은 선정위원들이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여수보다는 비교적 낙후한 서부권 시군에 후한 점수를 줬을 수 있다.

여수에 비해 보성, 신안, 완도는 갯벌과 습지 등 생태자원이 풍부한 것도 장점이다. 특히 완도‧해남‧강진군의 공동유치, 목포시가 신안군 유치를 지지하며 행·재정적 지원 및 협력을 선언한 점도 유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여수시가 2년 전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 타당성 용역을 진행해놓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캐비닛 계획에 그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시, 2년 전 박물관 건립 타당성 용역
여수시 대응과 유치 전략 방안 담겨
공모 담당부서 용역 최근에서야 알아

여수시 투자박람회과는 지난 2020년 9월 2일부터 11월 20일까지 박람회장 사후활용 방안 차원의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20000여만 원이 투입됐으며,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맡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수시는 박람회재단, 해수부와 협의를 통해 여수박람회장 내 박물관 건립 부지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부지 매입비용이 과다하고 사후활용 계획 변경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므로 우선 박람회장 내 비매각 대상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추가적인 부지면적이 필요할 경우 관련 비용을 확보하려는 의지도 주문했다.
 

▲여수시와 완도‧해남군의 해양수산박물관 입지조건 비교. (자료=여수시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용역 최종보고서)
▲여수시와 완도‧해남군의 해양수산박물관 입지조건 비교. (자료=여수시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용역 최종보고서)

지난 2000년 5월 해수부가 실시한 ‘국립해양박물관 건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수시는 18개 해안 도시에 대한 입지평가에서 해양산업 잠재력(수산업, 해운항만업, 조선업, 해양관광) 3위, 관광시장 여건(시장규모, 연계 관광자원, 접근성) 15위, 지역 여건(자연환경여건, 배후여건, 계획여건) 4위를 기록했다.

최종순위가 7위로 군산, 목포, 광양 등 전라권 내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광역지자체를 제외하고 속초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부산은 국립해양박물관, 목포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건립됐다.

보고서는 평가 당시 낮은 점수를 기록한 관광시장 여건의 경우 여수는 2012년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관광객 수, 연계관광자원, 접근성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해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에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우수한 해양자원과 역사, 전국 2위의 항만물류산업, 높은 관람객확보와 접근성용이 등 여수시가 가진 우수한 입지조건과 한국해양수산의 미래에서 여수박람회장이 가진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관련 기관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서남해안권인 해남·완도군 비교해 여수시는 남해안 남중권으로 수도권, 영남권에서 접근성이 훨씬 용이하고, 관람객 확보 면에서 서남해안권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했다.
 

▲ 여수시 12개 사회단체가 28일 오전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여수 유치’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 여수시 12개 사회단체가 지난달 28일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여수 유치’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와 서남해안권에 해양수산박물관 설립 시 입지조건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여수가 서남해안권에 비해 경제적, 재무적 타당성이 매우 높아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수시는 2005년 이후 해양수산 관련 유물을 수집하는 활동을 지속 추진해 왔다. 현재(2020년) 여수시에 173점의 해양수산 관련 유물이 보관돼 있으며 국립해양박물관에서 73점을 구입했다.

이어 전국에 산재돼 있는 여수 관련 해양수산 유물을 지속해서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2026년 유치예정인 세계섬박람회 등과 관련해 섬과 관련된 역사, 유물, 어업 등의 관련 콘텐츠를 확보해 박물관 건립 시 전시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실현 가능한 건립유치 방안과 기관별 역할도 제시했다. 보고서는 전남도와 해수부 설득, 여수시‧대학‧시민단체 등이 연합해 유치추진위 구성, 관계기관 건의와 시민들의 유치 열망을 지속적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을 주문했다.

아울러 광양만권, 남해안남중권 차원에서 박물관 유치운동을 벌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여수시는 박람회재단, 해수부와 협의해 박람회장 내 박물관 건립 장소 확보를 주문했다.

여수선언실천위원회 등 시민단체는 전남도, 해수부에 박람회장 내 해양수산박물관 건립의 정책적 타당성 제시 등 유치활동을 전개하고, 범시민 유치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런데 이번 공모사업 주관 부서인 여수시 수산경영과는 최근에서야 이 용역의 존재를 알았다. 

▲왼쪽부터 명현관 해남군수, 강진원 강진군수, 신우철 완도군수
▲왼쪽부터 명현관 해남군수, 강진원 강진군수, 신우철 완도군수. (사진=완도군)

여수시, 사실상 준비 부족
사업 추진 체계 점검 필요

전남도가 2017년 1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박물관 건립 기본 구상안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마치고 2019년 5월 해수부와 기재부, 국회 등에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을 건의한 시점과 여수시가 자체 용역을 맡긴 시점을 감안하면 시가 박물관 유치를 준비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여수시는 2년이 다 되도록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관련 업무를 추진한 적이 없다. 공모 사업이 시작되면서 용역 내용도 공유하는 등 준비에 허점을 드러냈다.

여수시는 지난 7월 26일 공모 1차 설명회에 참석하고 이후 시장 공모사업 검토 보고, 공모계획 수립 방침 결정, 후보지 8개소 입지여건 분석을 통해 여수박람회장과 진모지구 매립지 2곳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부지 선정을 위한 타당성 용역 결과 부지 확보용이 등의 이유로 시유지인 진모지구 매립지가 최종 후보지로 추천됐다. 박람회재단 측이 박람회장 부지 무상제공 불가 입장을 밝힌 점도 작용했다. 시는 대상 부지를 500억 원(추산)에 매입하기로 했다.
 

▲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여수 유치 기원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여수 유치 기원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9월 13일 박물관 건립 후보지 선정 공모를 위한 태스크포스팀 구성 회의, 교수‧전문가‧어업인단체 등으로 구성된 유치 자문위를 구성했다. 시는 공모 마감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난달 19일 시의회 전체의원 간담회에서 진모지구를 후보지로 보고했으나 시의회가 여수박람회장을 후보지로 추천하면서 부지를 변경하는 등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이후 여수선언실천위원회, 주민자치협의회, 수산인협회, 새마을회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시의회의 지지 선언, 시·시의회·박람회재단 업무협약 체결, 전 시민 유치지지 서명운동까지 펼쳤으나 허사에 그쳤다.

여수시 관계자는 “지역 균형발전이 많이 고려된 것 같다. 유치 실패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 모습. (사진=인천시)
▲현재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 모습. (사진=인천시)
▲국립인천해양박물관 조감도. (사진=인천시)
▲국립인천해양박물관 조감도. (사진=인천시)

인천시의 국립 해양박물관 유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해양박물관은 2002년부터 시작된 인천시 대표 공약사업으로 그동안 각종 공모 신청, 인천시민 100만 서명운동 등 오랜 기간의 시민 참여와 유치 노력이 담긴 숙원사업이었다. 2002년 유치에 실패한 인천시는 2017년 박물관 건립 방침 수립, 부지매입 및 예타 신청을 통해 2019년 7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최종 통과했다. 현재 2024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철현 의원 등 여수지역 일각에서 정확한 세부 평가자료 공개 요구, 동부권 차별, 불공정 평가 등을 지적하고 나섰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여수시가 행정력 강화, 정치권 지원 등 지역 현안 사업 추진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규 여수시의회 의장은 18일 제224회 임시회 폐회사에서 박물관 유치 실패에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명했다. 김 의장은 “중차대한 기회를 시 정버의 안일한 대응으로 놓쳐버렸다”며 “시 정부는 유치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향후 각종 공모사업에 대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