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도초·중학교 전경.

주 시장, “외고 설립 외 여수 교육 대안 없다”…산단 기업에 지원·협조 요청
산단 기업들, ‘겉으론 협조, 속으로 부글부글’…“대놓고 누가 반대 하겠나”
학교 구성원인 학생·교사·학부모는 허수아비?…“신뢰와 공감대 형성이 먼저”


민선6기 주철현 여수시장의 핵심 공약으로 여수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립 외국어고등학교 설립이 공론화 과정 생략, 사립외고가 여수교육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시민단체의 반대, 여수국가산단 입주 기업들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특히 시장이 여수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은 명문고 설립 밖에 없다며 강력하게 추진하는 핵심 공약이고, 더욱이 지역 교육의 명운을 가를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그동안 제대로 된 논의의 장이 마련된 적이 없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부정적인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하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과 지역 교육계, 학생·교사·학부모·여수산단 기업 등 여도학원의 구성원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여론을 숙성시킨 후에 추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다보니 주 시장 임기 내에 치적을 쌓기 위해 서두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여수시의 계획은 여도학원 즉, 여도초등학교를 공립으로 전환하고 여도중학교 부지 등에 사립 외고를 설립해 운영하는 방안이 주요 골자다. 외고 운영비는 그동안 입주 기업들이 분담해 내고 있는 출연금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출연기업들에게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민선 6기 여수시는 그동안 여도학원을 사립 외고로 전환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지난해 11월 ‘사립외국어고 설립 및 여수교육 개혁을 위한 민관 합동 TF팀’도 꾸렸으며, 여도학원에 출연금을 내고 있는 산단 입주 기업들을 맨투맨으로 만나 설득해왔다.

하지만 여론 수렴 미흡, 일방적 추진, 사립 외고 설립이 여수교육의 해법이냐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나섰고, 학교 운영비 대부분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산단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있어 사립 외고 추진 동력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더욱이 여도학원의 직접적인 당사자이면서 구성원이기도 한 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의견은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전략 없이 변죽만 요란하게 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의식해 여수시는 뒤늦게 사립 외고 타당성 연구 용역을 발주키로 했다. 지난 3일에는 시청 상황실에서 여수산단공장장협의회 주요 회원사 공장장 11명을 초청해 ‘사립 외고’ 설립을 주제로 간담회를 갖고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 주철현 여수시장은 지난 3일 시청 상황실에서 여수산단공장장협의회 주요 회원사 공장장 11명을 초청해 ‘사립 외고’ 설립을 주제로 간담회를 갖고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이날 간담회는 사립 외고 설립 추진과 관련해 시가 산단 공장장들과 공식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첫 자리였다. 시는 이날 공장장들에게 외고 설립 추진 배경과 여수의 현 교육환경, 외고 설립 계획안에 대해 설명하며 사립 외고 설립 당위성을 강조했다.

주 시장은 이 자리에서 “오래 끌어선 안 된다. 기업들이 신속하게 결정해 달라. 기업들이 마음만 전향적으로 바꾸면 가능하다”며 “필요하면 기업 오너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외고 설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시는 간담회 다음날(4일) 보도 자료를 내어 사립 외고 설립에 여수산단공장장협의회가 적극 협력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수시가 기업들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여론 몰이를 하는 것 같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시장과의 공식적인 회의에서 대놓고 속내를 모두 이야기할 기업들이 어디 있겠냐는 것. 기업들은 시의 사립 외고 설립 취지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 소속 직원의 자녀수에 따라 분담금을 나눠 내고 있는데 외고에 직원 자녀가 다니지 않아도 영구적으로 내야 하는 상황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다.

또, 외고가 설립되더라도 직원 자녀의 입학이 보장되는지, 인문계인 외고에 얼마나 들어갈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기업들이 외고 설립을 전적으로 반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시는 광양제철고처럼 전체 학생수의 일정 비율을 산단 직원 자녀들로 보장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며 큰 틀에서 외고 설립 합의를 먼저 하고 세부적인 것은 추후 조율해가자는 입장이다.

마음이 급한 여수시와는 달리 산단 기업들은 출연 기업간 내부적인 논의, 본사와의 조율 등의 절차가 있고, 제대로 된 여론 수렴이나 향후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내릴 결론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누군가 하나 총대(?)를 멘 기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여수시가 민선6기 들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온 추진한 결과치고는 ‘외고’에 대한 여수산단 기업들과의 온도차는 상당히 커 보인다.

여수산단 A기업 관계자는 “차라리 50억이고, 100억이고 한번만 내고 끝나버리면 울며 겨자 먹기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도 기업들이 여도초·중 운영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설립 이후 교육 정책이나 시장이 바뀌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출연 기업들은 지난해 여도학원에 대해 현 시스템 점검과 향후 운영 방안 고민 차원에서 용역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는 또 “만일 외고가 10년, 20년 후에 필요악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여러 가능성들을 감안해 공약을 추진하는 주체들이 입안 단계에서부터 향후 실행 과정 등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한 후에 추진해야 하는데, 시작은 그럴싸하게 해놓고 후에 유지를 못하는 실행 방안은 있으나마나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여수산단 B기업 관계자는 “(외고 전환에 있어)직접적인 당사자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일진대 여수시는 추진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은 거의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학교 측에 외고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도 전혀 논의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다수 시민이 원하기 때문에’, ‘시장 공약이기 때문에’ 여도학원과 산단 기업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중학교 교사들은 학교가 없어진다는 데 마음 편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냐. 이들에게는 밥줄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시민을 위한 일이라면서 여수시가 되레 시민의 목줄을 죄고 있는 형국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꼭 필요한 사업이라 할지라도 신뢰와 지역사회 공감대가 전제돼야 하는데 번갯불에 콩 볶듯이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시장 공약이니까 공무원들은 목숨 걸고 따라가야 한다는 식은 구시대적인 행정의 단면이다”고 꼬집었다.

C기업 관계자는 “여수시는 현재 내고 있는 출연금에서 더 이상 부담을 지우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시설 노후화, 물가 상승률, (외고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추세로 봤을 때)학생수 감소 등으로 인한 분담금을 영구적으로 낼 수도 있다는 부담감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 몰이도 좋지만 이런 식은 아닌 것 같다. 여수시가 매년 수십억원의 보조금을 학교에 지원하는데도 학교들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공론화 과정도 생략한 채 외고 설립을 추진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점검하고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고 말했다.

지역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외고를 설립해 놓으면 하루아침에 명문이 되나. 시간과 자본,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지난해 타 지역 고교로 진학한 207명 가운데 전남외고를 간 학생은 8명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며 “인문계인 외고는 선택의 범위가 좁고, 요즘은 경쟁력도 예전만 같지 않다”고 말했다. 순천, 목포, 광양에서도 전남외고로 진학한 학생은 각각 10여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학생 유치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우수 교사 확보가 관건인데 쉽지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학생 자녀가 있다는 시민 김모(47)씨는 “지역의 인재 유출과 인구 감소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외고를 설립한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외고를 설립하면 우수 인재가 지역에 남을지 어떻게 장담하나. 그래봐야 지역을 떠나는 시점을 3년간 유예시킬 뿐이다. 결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빠져 나간다. 근본적인 처방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발굴하고 지역에서 공헌할 수 있는 토대구축을 통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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