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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가 기억하고 품어야할 문화예술인들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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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9  10: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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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배동신, 허영만, 김정수, 배병우 등은 여수 출신이면서 비교적 많이 알려진 문화예술인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 출신 문화예술인들도 많다.

전남 최초 서양화가인 김홍식,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경채, 일제 강점기 때 서양화가 박근호, 여수문학의 산증인 박보운, 동화 작가 김자환, 한국 출판계의 거목 윤형두 범우사 대표 등은 여수 출신이지만 지역에서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용팔이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배우 박노식, 탤런트 겸 영화배우 백일섭 등도 여수 출신이다.

   
화가 김홍식
전남 최초 서양화가·독립운동가 김홍식

호남근대화단의 선구자인 김홍식(金鴻植 1897~1966)은 여수 만성리 출신의 전남 최초의 서양화가이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한국인으로 첫 졸업한 동경미술학교(현 동경예술대학·일본 도쿄에 있는 국립 예술대학)를 나왔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과 여수시사에 따르면 김홍식은 여수시 교동 234번지에서 1897년 1월 11일 당시 여수지역 부농인 김한익과 유목임 사이의 7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 때인 1910년 여수보통학교, 현 여수서초등학교가 문을 열자 1회로 입학해 신학문을 익혔다. 5학년 때인 1914년 정재진과 결혼했다. 191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유지의 추천을 받아 당시 명문 학교였던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4학년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해 제적당했다.

1922년 법학도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진로를 바꿔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동경미술학교 후지시마 교실에서 서구적 조형 기법을 익힌 뒤 전남 최초의 서양화가가 됐다.

귀국 후 고향 여수에서 맞돕회(일제강점기 여수지역 청년들이 조직한 사회 운동 단체) 등 청년 활동과 여수농민회에 참여해 민족개화운동에 앞장섰다. 1928년 남조선철도주식회사가 광주와 여수 간 철도 건설을 빌미로 토지를 매입해 투기를 하려는 속셈에 반발해 철도토지매입반대운동을 주도했다.

   
▲ 화가 김홍식의 집. 여수시 만흥동 여수북초등학교 뒤에 있는 천성산 기슭에 옛날 흥국사 말사였던 만흥사 터가 있었던 절골에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화실과 인근에 묘소가 있다. 현재는 빈집으로 남아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해방 후 미군정 시절, 김홍식은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김구, 김규식 계열의 민주자주연맹에 동조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교분을 맺은 송진우, 김성수 등과도 친분이 두터웠으며 해방공간 무렵에는 그의 화실에 좌익계 진보적 지식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수시 만흥동 234번지 여수북초등학교 뒤에 있는 천성산 기슭에 옛날 흥국사 말사였던 만흥사 터가 있었던 절골에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화실과 인근에 묘소가 있다. 현재는 빈집으로 남아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작품으로는 <자화상>, <나부裸婦>, <욕장> 등 인물화와 누드 4점, <다리가 있는 풍경> 등 풍경화 8점, <백모란>, <화병> 등 정물 4점이다.

사회 운동가인 김홍식이 서양화가로 알려진 것은 그가 작고한 지 30여 년 만에 공식적인 전람회에 작품이 공개되면서 미술가로서 삶이 새롭게 조명 받게 됐다. 1995년에 열린 ‘전남미술 50년’에 대표작 <욕장(浴場)>이 출품되면서부터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1997년 2월 9일부터 1998년 3월 10일까지 열린 ‘한국근대미술-유화, 근대를 보는 눈’에 초대되었다. 이러한 전시회를 통해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 활동가의 화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게 됐다.

김홍식의 작품 중 풍경화가 많은 것은 화실 주변 경치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화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만성리 바닷가 해변 바윗돌과 화실이 위치한 천성산의 사철을 그렸다. 산벚꽃이 만발한 봄녘과 싱그럽게 우거진 녹음이 짙은 숲, 눈이 쌓인 천성산 모습이다. 그림 <나부裸婦>의 실제 모델이 현재 여수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가 유경채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경채

유경채(柳景埰 1920~1995) 화백은 여수 돌산 출생으로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김홍식의 뒤를 잇는다.

유 화백은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등단했으며, 본격적인 화가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도쿄[東京] 녹음사화학교(綠陰社畵學校) 회화과를 졸업했다.

1949년 국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폐림지(廢林地) 근방>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이후 1981년 국전제도가 폐지되기까지 연속 4회 특선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국전 초대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장, 예술원 정회원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동백장, 3·1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화가 박근호
서양화가 박근호

여수 출신의 서양화가다. 같은 여수출신인 전남 최초 서양화가 김홍식과는 먼 인척간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배재고등학교를 거쳐 동경미술학교에 진학했다. 조선미술전람회 제10회, 제11회 입선했으나 광복 이후 화단활동이 알려진 것이 없다.

박근호(朴根鎬 1902~?)는 ‘녹향회(綠鄕會)’에 참여해 1931년 열린 제2회 ‘녹향회전’에 출품했다. 녹향회는 근대기 유화가 국내에 유입되었을 당시 일본에서 서양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작가들을 중심으로 1929년 5월 창립된 그룹으로 조선의 향토적 정서를 탐구하고자 한 유화가 그룹이다.

박근호는 1931년 아직 졸업을 앞둔 학생신분으로 ‘녹향회’에 참여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조선양화의 토대건설과 미술의 민중화’라는 기치를 내건 ‘녹향회’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은 그의 성향을 짐작케 한다.

박근호의 <자화상> (1932, 캔버스에 유채, 60.8×45.7㎝, 일본 동경예술대학 예술자료관)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교복이나 양복을 입지 않고 우리 민족의 상징처럼 여겨진 하얀 두루마기의 한복을 고수한 점에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박근호의 <자화상>이 다른 많은 동경미술학교 한국 유학생의 작품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사실감이 충만하다는 점이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인물의 표정과 이목구비의 형태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범우사 윤형두 대표
한국 출판계 거목 범우사 윤형두 대표

한국 출판계 거목 윤형두(80) 범우사 대표는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출신이다. 2000년 ‘자랑스러운 여수시민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윤 대표는 지난 3월 모교인 순천대박물관에 국보급 유물인 고려시대 초조대장경(대반야바라밀다경 제565권)과 재조대장경(대방광불화엄경 제54권) 인쇄본을 기증했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인쇄본은 고려 현종 2년(1011)에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판각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 인쇄본이다. 거란족 침입에 대비해 국민정신을 통합하고 부처의 위신력으로 외적을 격퇴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대장경 판각을 시작한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표상이기도 한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고군 침입으로 모두 소실돼 당시 인쇄본은 매우 희귀하면서도 문학적 가치가 높다.

재조대장경 인쇄본은 목판이 8만여개에 달해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린다. 국보 제32호로 현재 해인사에 소장돼 있는 목판본의 인쇄본으로 초조대장경 소실 이후 당시 집권자인 최우 등을 중심으로 16년 만에 완성해 다시 판각했다는 의미로 재조대장경이라고 불린다.

윤 대표는 지난해 4월에는 조선시대 금속활자본 66권을 기증한 바 있다. 윤 대표는 이외에도 1985년부터 순천대도서관에 각종 도서 2만2000여권을 기증해 왔다. 지역의 일부 인사들은 여수에 박물관이 있었다면 유물들을 여수로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타내고 있다. 윤 대표는 고향 여수시에도 1만권이 넘는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영화배우 박노식
여수서초교 졸업 영화배우 박노식, 출연작 700여편

박노식(1930~1995)은 여수서초등학교 32회 졸업생으로 우리나라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배우이다. 주연과 연출을 겸한 영화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주연작은 300여편, 조역과 단역출연작까지 포함할 경우 700여편에 이른다.

<인간 사표를 내라>, <벙어리 삼룡이>, <마도로스 박>, <명동 노신사>, <운전수 용팔이> 등의 ‘명동 시리즈’와 ‘용팔이 시리즈’를 통해 허장강·장동휘 등과 함께 국내 액션영웅 1세대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1966), 대종상 남우조연상(1968),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1969),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1972),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1973)을 수상했다.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와 호쾌한 액션, 독특한 표정연기로 한국영화의 중흥과 쇠퇴를 같이 한 한국영화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배우 박준규가 그의 아들이다. 현재 여수시 서강동에는 박노식 씨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탤런트이자 영화배우 백일섭, 개그맨 김미려도 여수 출신이다.

   
권투선수 김기수
여수문학 산증인 박보운, 동화 작가 김자환

문학인으로 박보운(1931~2009)과 김자환(1952~2008)이 있다. 박보운은 여수공고와 조선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5년 엄심호, 김용태 등과 함께 〈여수문학〉의 전신인 〈여항〉을 발간해 여수문학의 산증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 뒤 〈여항〉을 〈역우〉로 바꾸어 〈역우〉 동인을 중심으로 한국문인협회 여수지부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설립을 주도했으며, 여수문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김자환은 순천 출신이지만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여수 초도초, 율촌초, 북초, 구봉초, 여도초 등 30년을 넘게 여수지역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활동한 동화 작가다. 주로 장편동화를 즐겨 쓰며, 특히 아름다운 항구 도시 여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썼다.

체육인으로는 김기수(1938~1997)와 방호남(1928~2001)이 있다. 김기수는 방호남 사범의 지도로 권투를 시작, 1966년 7월 12일 우리나라 복싱 역사상 최초로 WBA주니어 미들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김기수 선수는 함경북도 북청 출신으로 월남해 여수에 정착, 여항중학교를 졸업했다. 방호남씨는 1975년 WBA주니어 미들급 세계챔피언 유제두(고흥) 선수도 지도했다. 여수시 고소동에는 이들이 훈련한 ‘여수체육관’이 있다.

참고자료 : 여수시사, 디지털여수문화대전,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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