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숙박시설 무산 이후 올해 같은 곳에 13층 아파트 신축 추진
여수고 학생‧학부모‧동문회‧시민단체 등 해당 부지서 신축 반대 집회
건축주, “법적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우리도 당황스럽다”
여수시, 학교-건축주 입장 고려해 허가 여부 검토…소송 가능성도

학교 담장 안에서 아파트 신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마재일 기자)
학교 담장 안에서 아파트 신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마재일 기자)

전남 여수시 여수고등학교와 인접한 부지에 13층 높이의 공동주택 신축이 추진되는 가운데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건축을 반대하는 학교 측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건축주의 입장이 맞서면서 갈등이 심화할 조짐이다. 특히 해당 부지가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성 지휘소인 동장대(東將臺) 터로 알려져 이번에 아예 시가 매입해 문화 유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여수고 학부모, 동문회, 주민, 향토사학자, 시민단체 등 30여 명은 28일 오후 1시 20분 해당 부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교육환경 침해와 역사적 가치 훼손을 우려하며 13층 아파트 건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코로나19 상황 등을 감안해 학생들은 학교 담장 안에서 피켓을 들고 동참했다.

여수시와 학교 측에 따르면 해당 건축주는 지난 6월 여수고등학교 옆 여수시 수정동 404-2번지 외 1필지 915㎡ 부지에 연면적 2398㎡, 지하 1층 지상 13층 규모(22세대)의 아파트를 짓겠다며 건축 허가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여수시 경관위원회는 층수를 낮추고 디자인 보완 등으로 조건부 의결한 상태이다.
 

여수고등학교 인접 13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 부지 위치(노란색원 안). (사진=뉴스탑전남)
여수고등학교 인접 13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 부지 위치(노란색원 안). (사진=뉴스탑전남)
여수고 인접에 추진 중인 13층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고 인접에 추진 중인 13층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 (사진=마재일 기자)

건축주는 지난 2019년에도 이곳에 7층 규모의 숙박업소를 지으려다 학교와 학부모, 동문회 등의 반발을 샀다. 교육청 교육환경심의위원회에서 5차례 부결되는 등 반려 처분 이후 1층 일반음식점으로 건축허가가 났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13층 규모의 아파트 신축이 추진되자 학교와 학부모, 동문회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 해당 부지는 학교 담벼락과 붙어 있고 2·3학년 교실이 있는 학교 본관과 1학년 교실이 있는 별관, 매점과 급식실과의 거리가 가깝게는 수 미터, 멀게는 십 수 미터에 불과하다.

여수고 학부모회는 학부모와 학생, 동문, 지역 주민 등 3054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 옆 공동주택 신축허가 반대’ 내용의 진정서를 여수시에 제출해 허가 불허를 요구했다. 여수시는 지난 8월 중순 학교 측과 건축사‧시공사 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재에 나섰지만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당시 학교 측은 건축주가 층수를 조정(3층)해 학교 건물 높이 이하의 건물로 건축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오재환 여수고 운영위원장. (사진=마재일 기자)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오재환 여수고 운영위원장. (사진=마재일 기자)
전남 여수시 여수고등학교와 인접한 부지에 13층 높이의 공동주택 신축이 추진되는 가운데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건축을 반대하는 학교 측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건축주의 입장이 맞서면서 갈등이 심화할 조짐이다. 여수고 학부모, 동문회, 주민, 향토사학자, 시민단체 등 30여 명은 28일 오후 1시 20분 해당 부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교육환경 침해와 역사적 가치 훼손을 우려하며 13층 아파트 건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전남 여수시 여수고등학교와 인접한 부지에 13층 높이의 공동주택 신축이 추진되는 가운데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건축을 반대하는 학교 측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건축주의 입장이 맞서면서 갈등이 심화할 조짐이다. 여수고 학부모, 동문회, 주민, 향토사학자, 시민단체 등 30여 명은 28일 오후 1시 20분 해당 부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교육환경 침해와 역사적 가치 훼손을 우려하며 13층 아파트 건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학교 측은 원안의 13층 아파트 건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건축주는 사유재산권 행사를 주장하며 13층 높이로 건축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갈등이 심화할 조짐이다. 숙박업소와는 달리 주거시설은 교육청 심의가 필요 없어 이번 경우엔 법적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오재환 여수고등학교 운영위원장은 “아파트가 담장에 바로 붙어 있고 기반암은 굉장히 단단한 경암이다. 이것을 파헤쳐서 공사하면 1년 동안 아이들은 공부를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이어 “3000여건의 탄원은 시작이다. 1만개의 탄원이 모이면 여수시민의 청원까지도 무시할 것이냐”며 “이를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하면 우리도 모든 대책을 강구해 대응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여수시에 대해서도 13층 아파트 인허가 불허 처리를 요청했다. 학교 측 관계자는 “2년 전과 올해 초 터 닦기 공사 때 소음과 분진으로 겨울 방과후 학교 수업을 진행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김남경 여수고 학생회장(2학년)은 “75년 역사의 명문고가 우리 대에 와서 장대의 기상이 훼손될까봐 우려된다”며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이 우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미란 여수고 학부모회장은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쾌적한 학습권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학교가 답답하고 아파트는 영원히 흉물로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파트 신축을 추진하는 업체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 추진 상황과 일정을 검토하고 있다. 수능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 대해서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법적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경관위원회에서 제시한 대로 하고 있는데 사업이 너무 오래 지체돼 우리도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라. 우리도 당황스럽다. 사유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면 학교나 동문회 측에서 부지를 매입하는 방안도 있지 않느냐”며 “현재로서는 결론이 정해진 바 없다. 회사 내부적으로 논의해 결정할 문제이다”고 말했다.
 

신축 예정인 13층 아파트 조감도.
신축 예정인 13층 아파트 조감도.
학교에서 바라본 13층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 (사진=마재일 기자)
학교에서 바라본 13층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 (사진=마재일 기자)

“이순신장군 얼 서려 있는 동장대 복원하고 시가 부지 매입해 공원화”

이처럼 논란이 잇따르자 여수시가 해당 부지를 사들여 개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해당 부지는 전라좌수영의 동장대(東將臺) 터로 추정되고 있다. 장대(將臺)는 장수가 작전 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리는 곳으로 군사적 요충지이다. 전투 시에는 지휘소 역할을, 평상시에는 성의 관리와 행정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수군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무과를 보기도 했다. 여수에는 여수고 동편 동산의 동장대(東將臺), 종고산의 북장대(北將臺), 고소대 동문 좌포루(左鋪樓) 등 3곳의 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병호 여수시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은 “이곳은 여수엑스포 이전부터 여수시가 동장대 누각을 복원하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발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며 “이런 유적지에 아파트를 짓는다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임영찬 여수참여연대 공동대표는 “학교 담장 바로 옆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다니 이해할 수 없다. 교실과 너무 가깝고 경관을 해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동장대 터 전경. (사진=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동장대 터 전경. (사진=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학교 담장 안에서 아파트 신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마재일 기자)
학교 담장 안에서 아파트 신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마재일 기자)

해당 부지 인근에서 어릴 때부터 살고 있는 60대 주민 박순철 씨는 “아파트가 들어서면 우리 마을은 일조권이 막혀 거주지로서 가치가 급락할 것”이라며 “이 부지를 여수시가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동장대도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수고등학교는 교지, 학교 축제, 다목적강당, 문화관 등에 ‘장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유성종 여수고 교장은 “장대 터가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후손들이 지켜야 할 소중한 역사적 가치이기도 하다”며 “이곳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호국의 성지 여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향토역사교육을 위해 올해 말 완공 목표로 담장 안쪽에 학교 자체적으로 동장대 누각을 복원 중이다.

최재준 여수고 동문회 사무처장은 “이순신 장군의 얼이 서려 있는 동장대는 역사적 사료 가치가 높고 동문들이 여기에서 꿈과 기상을 키워 왔던 곳이다. 동장대를 다시 복원시켜서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 처장은 이어 “(조감도를 보면)건물 하나만 달랑 솟아 있는데 흉물이다. 그 무엇도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동문회 차원에서 강력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여수시는 건축주와 학교 측의 입장을 고려해 건축 허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해당 부지를 여수시가 매입해 동장대를 복원하고 공원화하는 문제는 관련 부서와 협의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건축 허가 신청을 불허할 경우 건축주가 과도한 사유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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