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를 약속하면서 여야 정치권도 정당공천 폐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민주통합당이 현행 유지로 방향을 정하면서 다시 쟁점화 되고 있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방이 중앙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고,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는 지금까지 정가의 단골 이슈였지만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해 왔다.

정당공천제의 법률적 근거는 공직선거법 제 47조 1항 ‘정당은 선거에 있어 선거구별로 선거할 정수범위 안에서 그 소속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에 있다.

당선되는 것은 주민의 뜻이지만 후보가 되는 것은 각 정당의 몫이라는 것인데 통상적으로 기초단체장(시장·군수) 후보는 중앙당에서 후보가 정해지고 기초의원(시의원) 후보의 경우는 당 지역위원회에서 결정돼 지역 국회의원의 입지가 막강해지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호남 지역은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 보증수표인 구조에서 정당공천 폐지가 현실화 될 경우 지역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만큼 지역 정가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지역정가의 반응도 다양하다. 우선, 다선 의원과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유리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적다. 이러다 보니 공약보다는 인물 위주로 선거전이 펼쳐지면 친화력과 대중 호감도가 높은 ‘이미지 정치인’이 등원할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입후보로 인해 불필요한 정치 비용 양산과 이로 인한 정치 불신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익명을 요구한 여수시의회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정당공천제는 기초의원을 중앙정치에 예속시킴으로써 지방의회의 자율성을 빼앗는 등 폐해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며 “정당공천제 폐지 시 후보들의 난립이 염려되지만 정치 신인에게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민주통합당)은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공약이나 정책, 자질보다는 눈치 보기가 판치고, 혈연·학연 중심으로 선거 구도가 짜일 수 있다”며 “기득권을 가진 기성 정치인이나 토호 세력이 오히려 정치판을 좌지우지, 여수의 정치문화가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방자치 시대에도 선거 때만 되면 정당공천에 발이 묶인 의원들이 때로는 자신의 신념이나 지역발전과 무관하게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선거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가 정치쇄신 공약으로 정당 공천제 폐지를 약속한 만큼 지역 정치권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찬반 여론이 갈리는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공론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일각에서는 시·군 의원부터 시작해 기초자치단체장까지 순차적으로 확대되는 방안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취임 이후 조기에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일각에서는 법을 개정하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내년부터 당장 실시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제도 폐지로 자기들의 심복을 잃는 기득권을 포기하기는 만무하다는 것.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난 달 17일 민선 5기 3차년도 4차 공동회장단 회의에서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게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의 조속한 이행을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 17개 시도의회 의원과 227개 시·군·자치구의회 의원 등 3천800여명의 전국 지방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22일에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의 대표 발의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당시 개정안의 제안이유를 보면 정당공천제의 폐해가 담겨 있다.

개정안은 ‘현행법의 정당공천제는 정당 중심의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도입된 것이나 이러한 취지와는 달리 지방이 중앙정치권에 예속되어 지방자치를 크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편 가르기식 선거양상으로 인해 지역사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해 지방정치의 자율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정치혁신위의 최근 정당공천제 현행 유지 결정으로 새누리당도 암묵적으로 동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제도 폐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년에 6월에 있을 지방선거의 지각변동이 어떻게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내천제 폐해 막을 제도 필요 vs 차라리 공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일각에서는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더라도 실질적으로 내천제가 작동할 것이며, 새 제도 도입 과정에서 과도기적 잡음과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법이 개정 돼 정당공천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해도 적어도 다음 선거까지는 어느 후보가 어느 당 소속이라는 색깔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입후보자들도 세대교체가 되면서 정당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의식변화라는 지적이다. 시민 박진수(둔덕동) 씨는 “지방자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공천을 거부한 후보가 실제로 있느냐”며 “유권자와 지역 정치인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기 전에는 정당공천제의 잔재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당공천제가 폐지된 후에 내천제가 작동하지 않으려면 제도적으로 지방선거 1년 전이나 6개월 전에 ‘탈당’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그런 제도적 뒷받침 없이 당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후보가 나온다면 정당공천제가 폐지돼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공천제가 폐지되더라도 정당이 존재하는 한 내천 가능성이 높은 만큼 차라리 공천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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