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2시 예정 기자회견·삭발식 잠정보류…재생추진위 “여수시와 협의 중”
여론 악화 우려해 일시 모면 의심도…“협의 안 되면 다시 투쟁에 나설 것” 경고

▲ 수십 년을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날아드는 매연과 분진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면서 고통받으며 살아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이 지난 10월 31일 시청 앞에서 여수시에 정주 여건 개선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타임즈 곽준호 기자)
▲ 권오봉 시장이 율촌면 도성마을을 방문한 지난 2월 18일 마을에 내걸린 환영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수십 년을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날아드는 매연과 분진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면서 고통받아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이 정주 여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예고했던 권오봉 시장 규탄 기자회견과 삭발식을 잠정 보류했다.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는 여수시가 대기업의 수상태양광 사업 개발행위허가 신청서를 반려 처분해 마을재생사업이 백지화되자 11일 오후 2시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10일 성명을 통해 ▲ 수상태양광 개발행위허가 신청서 반려 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 기각 이유를 명확히 공개하고, 법률 위반 사안이 무엇인지 제시할 것 ▲ 권오봉 여수시장은 GS건설이 제시한 마을발전기금 250억 원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밝힌 만큼 얼마를 누구에게 지원해야 하는지 밝힐 것 ▲ GS건설의 수상태양광 개발행위 허가를 무산시킨 만큼 여수시는 도성마을에 대한 어떤 마을재생 대안을 갖고 있는지 밝힐 것 ▲ 정부와 민주당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반하는 여수시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무엇인지 밝힐 것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경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도성마을과 여수시가 진지하게 협의를 하기로 했으며, 이번 기회에 여수시와 정주 여건 개선, 수상태양광 등 마을 문제에 대해 협의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그러나 협의가 되지 않으면 다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 도성마을 주민들이 10월 30일 여수시청 앞에 설치한 천막. 수십 년을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날아드는 매연과 분진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면서 고통받으며 주민들은 이날 여수시에 정주 여건 개선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일각에서는 마을 정주 여건 개선 의지를 보인 적이 없는 여수시가 삭발식으로 여론 악화를 우려한 나머지 이를 모면하기 위해 주민들을 긴급 회유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실태에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 여수시의 행정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상태양광 개발행위허가 반려 처분과 이의 신청서를 기각당한 GS건설이 이 사업을 계속 진행할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여수시가 임시방편식 땜빵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원빈 도성마을 이장은 “주민 대표들과 여수시 관계자들이 만나 의미 있는 얘기를 나눴다. 지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마을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여수시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 이장은 “GS건설의 250억 지원은 마을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마중물일 뿐이다. 행정과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그동안 방치해 온 것인데 기업에만 떠넘겨선 안 된다”고 적극행정을 주문했다.

하태훈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장은 “한센인이 사는 마을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철저히 방치되고 있는데도 여수시와 정치권, 지역사회는 줄 곳 외면해 왔다”며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이어 “여수시가 그동안 마을에 해 준 것이 뭐가 있나.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도 여수시는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은 단지 살기 위해 수상태양광을 유치했다. 어쨌거나 기업이 마을재생을 위해 도움을 주기로 했으면 행정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줄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 아닌가”라며 “주민들이 여수시보다 기업을 더 믿는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고 행정 불신을 드러냈다.

▲ 올해 2월 18일 권오봉 시장이 율촌면 도성마을을 찾아 사랑방 좌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여수시)
▲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사진=동부매일신문)

한센인 정착촌인 도성마을 주민들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국가로부터 강제적으로 격리돼 사회적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행정·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 가축이 사는 축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활환경은 열악한 실정이다. 집과 축사의 경계가 없어 비가 많이 올 때면 분뇨 오염물과 섞인 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 냄새가 나도 참고 살아가고 있다. 불볕더위에도 문이라는 문은 하나도 열지 못하고 있으며, 산단에서 날아오는 매캐한 냄새와 분뇨 악취, 축사 환풍기 소리에 두통약과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정도로 열악하다. 특히 도성마을의 석면 슬레이트 면적은 11만㎡가 넘는 것으로 파악돼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행정 당국은 마을 주민 건강과 주변 환경 영향을 조사한 적이 없다.

참다못한 마을 주민 40여 명은 지난 10월 31일 여수시청 앞에서 ‘여수시는 주민들 모두 죽을 때까지 기다리나!’, ‘주민을 개·돼지로 아는 권오봉 시장은 각성하라!’, ‘여수시는 도성마을 정주 여건 대책 마련하라!’, ‘권오봉 시장은 두통약·수면제 달고 사는 주민 고통을 아느냐!’, ‘아이들 건강권·환경권 방치한 교육청·여수시는 각성하라!’, ‘권오봉 시장! 마을에서 하루만 살아봐라!’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여수시에 정주 여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GS건설(주)은 2000억 원을 들여 율촌면 신풍리 도성·구암마을 주변 공유수면에 100MW 규모의 수상태양광 설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GS건설은 주민 자립과 정주 여건 개선 등 마을재생을 위한 마중물로 발전기금과 세탁공장, 스마트팜, 사회적기업 유치 등 250억 원 상당의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여수시는 서류 미제출, 인근 해변 선박 조사 및 피해방지 대책 미반영 등을 이유로 수상태양광 1단계 사업 개발행위허가 신청서를 반려 처분했다. 권오봉 시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GS건설이 제시하는 것이 내 기대치에 못 미친다. 그러면 (수상태양광 사업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불법으로 어업 행위를 하는 것은 이를 묵인한 관련 기관의 직무유기인데, 기업과 주민들한테 이들의 피해 대책을 세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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