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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민 귀한지 모르는 정치인과 공무원주민이 눈물로 고통과 편견을 견디는 도시는 행복한 도시일 수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뭐라도 들고 가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가장의 마음으로 도성마을 주민들을 대해야 한다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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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7  18: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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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여수시도 정치인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여수공항에서 4km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은 애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도성래 선교사(미국명 : Stanly C. Topple)가 한센인들을 위해 만든 정착촌이다. 1975년 입주한 205명의 한센인 회복자들의 자립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 농장 형태의 농원을 만들었다. 한센인들은 이곳에서 돼지와 닭 등을 키우며 생계를 이었다.

도성마을의 축산 농가는 한때 120여 곳에 이르렀지만 고령화, 축산물 수입 개방과 사료 값 인상에 따른 부도, 태풍 피해 등으로 축산을 포기해 현재 주민이 운영하는 축산 농가는 5곳만 유지되고 있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축사를 매입해 축산업을 이어가거나 폐축사로 방치되고 있다. 여수시가 민덕희(비례대표) 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도성농원은 현재 한우 4농가 63두, 돼지 15농가 6527마리, 산란계 2농가 3800수, 염소 1농가 25마리가 있다. 마을에는 136세대 주민 26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영유아부터 초·중·고생은 33명이다.

도성마을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주민들이 그동안 겪었을 고통과 편견을 보여주듯 열악한 환경은 보는 이를 경악케 한다.

마을의 모습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 가축이 사는 축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 도성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집과 축사의 경계가 없어 비가 많이 올 때면 분뇨 오염물과 섞인 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 냄새가 나도 참고 살아가야 하는 마을. 태풍 피해로 축사 대부분이 파손돼 유일한 생계 수단을 포기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지만 누구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은 마을. 111년 만의 최악 폭염에도 문이라는 문은 하나도 열지 못하는 마을. 악취에 환풍기 소리에 두통약과 수면제를 먹어야 하는 마을. 아이들이 마땅한 놀이공간이 없어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옆에서 놀아야 하는 마을. 사람들의 무지로 이유 없이 차별과 편견 속에 살아야 했던 한센인 마을. 우리시에 있는 마을인데도 없는 듯, 있으나마나한 마을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들은 수십 년간 가축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주변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피해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 정치인, 지역사회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주민들이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외쳤지만 어느 누구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특히 어른들조차 악취로 인해 두통약을 달고 산다는 이런 환경에서 33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옷에 냄새가 배어 학교 가면 놀림을 받는다. 문화·교육시설이 전무해 비가 새고 곰팡이가 핀 복지회관에서 오케스트라 연습을 한다. 누구의 책임일까?

우리는 좋은 추억만 가져도 모자랄 학창 시절을 ‘이 마을에 살지 않는다고, 멀쩡하게 살아계신 부모님을 돌아가셨다고, 친구를 마을에 데리고 오지 않는 아이’로 만들었다. 이 마을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 아이들이 자라서 여수시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여수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 도성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주민들은 여수시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인들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도성마을의 문제는 정치인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되묻게 한다. 그동안 정치권도, 행정도, 시민단체도, 언론도 도성마을을 외면했다. 역대 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선거 때만 표 달라고 읍소하고 정작 주민이 필요로 할 땐 옆에 없었다. 주민들이 바라는 것에 대해 행정과 정치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개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도성마을의 실태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가장 먼저 마을로 달려간 정치인은 지역구 의원인 최무경(여천·율촌·소라) 전남도의원이다. 최 의원은 주민들을 만나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전남도 관련 4개 부서에서 조만간 마을 현장을 방문하고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여수시의회 정현주(율촌·소라), 민덕희(비례대표) 의원은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났고, 주재현(율촌·소라) 의원도 마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해법 마련에 동참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수시의회 차원에서 마을 현장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지난 7일부터 12일간 일정으로 제187회 정례회를 열고 있는 여수시의회는 주요 시정 현안에 대한 문제점을 살피고 대안을 제시한다며 각 상임위 차원에서 남산공원 사업 현장, 낭만포차, 진남관 보수·정비 및 동헌 일원 복원 현장, 여순사건의 근원지인 한화사업장 등을 방문했다. 민덕희 의원은 언론 보도를 보고 마을을 찾게 됐는데 언론에서 접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끔찍했다고 했다.
 

   
▲ 도성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식구처럼 귀하게 여기길

주민들은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에 실태조사와 환경오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을 통해 “마을을 살려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여수시와 시의회, 지역 정치권은 더 이상 도성마을의 이런 절박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동원해야 마땅하다. 정부와 전남도도 국민과 도민의 건강권과 환경권 보호 차원에서 도성마을 주민들에 대한 건강영향조사 등을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도성마을 같은 상황이 도심에서 벌어졌다면 가만히 내버려 뒀겠나.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이 마을에 살았다면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런 환경에서 수십 년간 생활해 왔는데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지자체와 정부의 존재 이유가 의심된다.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국민의 자리, 도민의 자리, 시민의 자리’를 되돌려 줘야 한다.

그리고 여수시 공무원은 말로만 시민 공복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소정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겠지만, 이 마을의 충격적인 실태를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 지경으로 방치한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다. 공무원들이 손톱만큼 만이라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주민들의 고통과 호소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주민들이 여수시를 믿지 않는다고 했을까. 오죽했으면 행정구역을 순천이나 광양으로 바꿔달라고 하겠나. 오죽했으면 쓰레기 매립장이나 원전 폐기물 처리 시설을 유치하는 것이 낫다고 하겠나. 안타까운 일이다.

주민이 눈물로 고통과 편견을 견디는 도시는 행복한 도시일 수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뭐라도 들고 가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가장의 마음으로 도성마을 주민들을 대해야 한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식구처럼 귀하게 여기길 당부 드린다.

   
▲ 도성마을 옆 손양원목사기념관. (드론=심선오 기자)

도성마을 주민들 중에는 70명의 한센인들이 있다. 한센인들은 한센병 환자 격리수용 정책이 폐지될 때까지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해야 했고, 가족들조차 마음대로 만나지 못했다. 한센병은 유전질환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염되는 불치병도 아니다. 한센병은 결핵과 마찬가지로 법정 3군 감염병이다. 오히려 전염성은 결핵에 비해 100배 약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센인들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사회의 무지와 편견으로 평생 억울한 피해를 본 한센인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이 돈 몇 푼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한센인에 대한 편견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적잖은 한센인이 아직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며 정착촌에 모여 산다. 이들을 보통사람으로 대하는 성숙된 시민 의식이 요구된다. 내가 만난 한센인들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이웃일 뿐이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주민들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비참한 모습을 끊임없이 강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한센인 1세대의 힘겨운 세상살이를 그나마 견디게 해준 것은 종교였다. 이제는 여기에 시민들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필요할 때이다.
 

   
▲ 마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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