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 있는 삼산면의회 의사당, 군내리 돌산면의회 의사당과 함께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는 남면의회 의사당 철거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사성‧장소성 훼손이라는 비판적 지적이 나온다.

▲ 철거 전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모습. (사진=여수시 제공)
▲ 철거 전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모습. (사진=여수시 제공)

남면사무소 청사 신축 과정서 철거
시, 전문가 자문‧안전진단 D등급 등
기록 부재, 보존 가치 없다고 판단

전남 여수시가 남면사무소 청사 신축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거 남면의회 의사당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을 철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남면사무소 건물과 나란히 붙어 있던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이 함께 철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향토연구가 등은 황당해하면서도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21일 여수시에 따르면 총사업비 48억 1500만 원을 들여 연면적 1342㎡에 지상 3층 규모로 현 남면사무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청사를 신축하고 있다. 현재 터파기 콘크리트 파일(pile·말뚝) 공사로 인해 지반이 흔들리면서 인근 주민들이 주택 피해를 우려해 민원을 제기, 중단된 상태이다. 시는 공법 변경 검토를 완료하는 대로 공사를 재개할 방침이다.

여수시는 2층 규모에 연면적 64㎡, 1층 창고·2층 회의실로 구성된 이 건축물에 대해 의사당으로 쓰였다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 등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부족하고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철거했다고 밝혔다.
 

▲ 철거 전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내부 모습. (사진=여수시 제공)
▲ 철거 전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내부 모습. (사진=여수시 제공)
▲ 철거 전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 철거 전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 회계과 관계자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 여부를 따지기 위해 옛 건축물대장을 살폈고, 문화예술과 자문을 받았다”며 “터파기, 파일 박기 등의 공사 과정에서 붕괴 우려도 제기됐고, 마을 이장들도 부지 활용 측면에서 철거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근대 건축 전문가 2명한테서 자문을 얻은 결과 해방 이후 건립된 건축물로 판단돼 역사적 가치가 높지 않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점 등 보존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고 말했다.

이어 “건축물·토지 대장 기록으로 판단하면 6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의사당으로 사용했다는 얘기는 있는데 정확히 언제 신축이 됐는지, 실제로 쓰였는지에 대한 사진 등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는 철거 전 건물 내·외부 모습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이 철거됨에 따라 여수에는 돌산읍 군내리 돌산면의회와 삼산면 거문도에 있는 삼산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2곳만 남게 됐다.
 

▲ 남면의회 초대 의원들. (자료=여수시의회사)
▲ 남면의회 초대 의원들. (자료=여수시의회사)

여수시의회가 지난 2020년 발간한 ‘여수시의회사’에 따르면 면의회는 우리나라 지방조직의 최하급 지방행정기관인 면에 있었던 의결기관으로 1952년 4월 지방자치법에 의해 구성됐다가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폐지됐다.

1952년 4월 25일 대한민국 선거사상 최초의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전국 1308개 면에서 일제히 실시돼 1만 6051명의 면의회의원이 선출됐다. 여천군에서는 돌산, 소라면, 화양면, 남면, 쌍봉면, 율촌면, 화정면, 삼일면, 삼산면에서 총 118명의 면의원이 선출됐다. 이후 1956년과 1960년 두 차례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면장, 면의회 선거가 치러졌으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폐지됨에 따라 여수시 면의회 선거도 사라졌다.

책자에는 1‧2‧3대 의장‧부의장 명단과 의원들 사진이 수록돼 있으나 남면의회‧삼삼면의회·돌산면의회 의사당 건축물은 실려 있지 않다. 남면‧돌산‧삼산‧화양면의회 의사당 건축물의 형태나 외형에 쓰인 재료가 비슷해 모두 이 시기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남면의회 의사당이 맥락적 요인과 연계성을 고려한다면 보존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게 아니다.
 

▲ 삼산면의회 의사당 모습. 문화재청은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 삼산면의회 의사당 모습. 문화재청은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 삼산면의회 의사당 모습. 문화재청은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 삼산면의회 의사당 모습. 문화재청은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삼산면의회 의사당 건축물은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내항 일원을 올해 근대역사문화공간 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하면서 거문도사건 등 근대 문물 유입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보존돼 있고 근대 가옥 거리, 삼산면 의사당 건물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어촌마을의 근대생활사를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김병호 여수시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의사당 철거를 두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존치해 보존해야 한다고 수차례 당부했는데 어느 날 보니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예전에 삼산면의회 의사당 건축물도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막은 적이 있다”며 “이런 유산들이 모여 거문도가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 대상지에 선정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유산을 지키려는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면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큰데 시가 좀 더 원형보존을 위해 미리 존치 계획을 세우는 등 깊게 고민을 해야 했다는 쓴 소리도 했다. 여수시의 ‘보존 의지’를 지적한 것이다.
 

▲ 삼산면의회 제2대 의원들. (자료=여수시의회사)
▲ 삼산면의회 제2대 의원들. (자료=여수시의회사)

여수시, 미래유산 가치 보호하는 강력한 보루여야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철거는 여수시 문화유산 보존 정책의 단면을 보여 준다. D등급은 긴급한 보수, 보강이 필요한 상태일 때 받는 등급이다. 그렇다면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원형을 존치하는 방안은 정말 없었던 것일까.

의사당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없고 안전진단 D등급,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 문화유산 가치가 없어 철거했다는 여수시의 해명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철거한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여수시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유산 가치를 보호하는 최후이고 강력한 보루여야 한다.

여수에는 가뜩이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은 근대건축물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 철거는 더더욱 안타깝고 허망한 일이다. 남아 있는 건축물이라도 잘 보존해 후대에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비록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축물에 대해서 체계적인 보존·활용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건축물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예산을 마련해 시가 매입하는 등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 일본인 사찰 터에 세워진 여수의 최초 여관인 남도여관. (사진=마재일 기자)
▲ 일본인 사찰 터에 세워진 여수의 최초 여관인 남도여관.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에는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유산들이 꽤 있다. 일본인 사찰 터에 세워진 여수의 최초 여관인 남도여관은 세월의 무게를 이겨가면서 버티는 중이다.

일제강점기 건립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제일은행 여수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170호)은 민간인이 매입해 현재 상업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식산업은행’으로 항구 도시로서의 기능과 식민지 상공업의 상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2017년 매각 사실이 알려지자 여수시가 매입 또는 임대해 근대 역사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 일제강점기 건립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옛 제일은행 여수지점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2018년 2월)
▲ 일제강점기 건립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옛 제일은행 여수지점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2018년 2월)
▲ 일제강점기 건립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옛 제일은행 여수지점 내부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2018년 2월)
▲ 일제강점기 건립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옛 제일은행 여수지점 내부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2018년 2월)

장소와 기억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향기 나는 도시, 아름다운 도시, 자랑하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는 화려한 야경과 관광시설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래 쌓인 시간의 흔적이 보이고 그런 흔적 속에서 다양한 문화의 지층이 감지되는 도시, 다양한 기억을 품은 도시이다. 건축물에는 시대와 지역 역사의 굴곡이 녹아 있다.

역사성·장소성의 가치는 다양한 인프라 구축과 함께 재생으로 살아나 각 지자체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군산시가 좋은 사례로 꼽힌다.

군산시는 1899년 개항 이후 도입된 외부 문물과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보여 주는 근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군산 내항과 원도심 일대에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와 대한제국 시대에 지어진 군산세관, 조선은행, 일본 제18 은행,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 등이 있다.

철거를 결정하기 전에 의견을 조율해 여수시민에게도 결정 사안을 알리고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작업이 더욱 요구됐다. 철거와 보존, 가장 좋은 결정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여수시가 운영하는 문화유산위원회는 허수아비인가.
 

▲ 돌산읍 군내리 돌산면의회 의사당 모습. (사진=경광민 제공)
▲ 돌산읍 군내리 돌산면의회 의사당 모습. (사진=독자 제공)
▲ 돌산면의회 제2대 의원들. (자료=여수시의회사)
▲ 돌산면의회 제2대 의원들. (자료=여수시의회사)
▲ 화정면의회 의사당 모습. (자료=여수시의회사)
▲ 화정면의회 의사당 모습. (자료=여수시의회사)

우리 지역 역사의 한 부분이니까 어떻게든 유산으로 남겨 둬야 한다는 ‘원형보존’ 의식이 요구된다. 그게 안 된다면 복원도 가능하다고 본다. 있는 것도 지켜내지 못한다면 여수는 ‘뿌리 없는 도시’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근대 건축 전문가들은 남면의회 의사당 건축물이 근대 건축 자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이 의사당은 여수시의회의 역사적·장소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장소와 기억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장소가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여수시는 민선 8기 핵심사업과 공약 실현을 위해 문화유산 관리를 위한 ‘문화유산과’를 신설한다고 한다. ‘문화유산과’도 ‘생성·발전·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문화유산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역사성과 장소성이 더는 허망하게 사라지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정책을 기대한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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